X

달려라 배달민족 코리아

배재억 기자I 2011.12.07 13:54:27
[이데일리TV 배재억 PD]

                      

미국 뉴스채널 CNN의 아시아 정보 사이트에서는 최근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인 50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중 서울의 배달서비스를 3번째 이유로 꼽았다. 빠른 배달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기 위해 발전해온 우리의 배달문화는 이제 ‘빨리빨리’라는 단어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중화요리 집에는 하루 평균 100통의 전화벨이 울린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장면처럼 각 가정이나 사무실로 배달되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편배달부가 배달하는 편지와 매일 아침 신문배달원이 집집마다 넣어주는 신문, 그리고 다방 아가씨들이 끓여 배달하는 커피가 전부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배달문화는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소형 오토바이인 스쿠터의 보급 덕분이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스쿠터 보급으로 배달문화가 확산되었고, 1990년대 중반 택배업인 퀵서비스의 등장이후 대기업들이 본격적인 홈쇼핑 사업에 뛰어들면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택배나 배달로 해결되게 됐다”고 배달문화의 성장 배경을 말해준다.

배달의 영역 확대와 수요 급증은 주문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보고 전화로 주문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을 뛰어넘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단하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됐다.

식당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에 등록된 외식 업체 수 만해도 전국 10만여 곳에 이른다. 기술의 발달로 배달되는 품목의 제한도 거의 없어졌다. 트레이너가 직접 운동기구를 들고 집으로 찾아오는 움직이는 헬스장이나 전원주택이 인기를 끌면서 생긴 이동식 소형주택까지 배달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최근 좀비들을 뚫고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전문업체인 F사의 광고에서처럼 배달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소비자에게 물건을 직접 전달하는 ‘배달의 기수’들이다. 깊은 산속의 송신탑이나 망망대해도 이들이 배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그마치 40Kg짜리 압력밥솥을 메고 영양 닭죽의 맛과 정성을 그대로 배달하기 위해 험한 산길을 오르는 배달원도 있다.

한국 의류시장의 메카인 동대문 도매상가에서도 배달원들의 활약은 계속된다. 의류와 원단, 그리고 액세서리 전문 매장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배달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택배용 오토바이들이 하루 평균 1500여대 이상 몰린다. 운임료 4천원에서 만원을 벌기 위해 1분 1초를 다투며 택배 기사들끼리의 배달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스팔트 위의 배달원들은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 배달 건수에 따라 성과급이 정해지기 때문에 이들에겐 시간이 곧 돈인 것이다. 그래서 배달원들의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난폭운전은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배달원들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거리를 질주한다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이륜차 재해현황’에 따르면 음식업과 숙박업의 이륜차 사고건수는
2005년 578건에서 2010년 1876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청소년 배달원들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전국 14세 이상 청소년 배달원 2명 중 1명은 사고의 경험이 있다.

2011년 2월 청소년 피자배달원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배달 안전사고의 심각성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30분을 넘기면 피자 값을 할인해준다는 ‘30분 배달 보증제’가 그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사회단체는 물론 인터넷에서 많은 네티즌들이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통해 ‘30분 배달제’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고, 결국 3개의 대형 피자업체 모두 ‘30분 보증제’ 폐지라는 결단을 내렸다.

계속되는 배달원들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얼마 전 한 네티즌이 올린 사진 한 장은 많은 생각과 과제를 남겼다. “30분이 넘어도 괜찮으니 사고 나지 않게 안전하게 배달해주세요“라는 배려의 메시지였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된 만큼 배달하는 분들의 처우나 인권 문제도 생각하는 성숙한 사회가 돼야 된다”고 지적한다.

불철주야 거리를 누비는 배달원들의 수고 덕분에 우리는 편안한 식사가 가능하고 편리함을 느끼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편리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빨리 오세요”라는 말 대신 “안전하게 오세요” 라는 말 한마디가 ‘배달 천국’에서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 지켜야 할 자세 아닐까.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