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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에 청년 멘토로 등장했을 때 수줍은 듯 보였던 표정과 조용한 말투도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정치에 입문한 뒤 수차례 선거와 TV 토론, 정당 간 합당, 정치적 충돌과 좌절을 겪으면서 그의 이미지는 바뀌었다. 이젠 벤처사업가보다 정치인 안철수가 더 익숙해졌다.
지난 IT인물열전 상편을 본 한 독자는 안철수에 대한 옛 기억을 전해왔다. PC통신 시절 안철수는 컴퓨터 이용자들에게 이미 유명했다. 안철수는 자신이 만든 백신을 PC통신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훗날 군 복무를 위해 집을 떠나던 날 아침에도 V3를 손본 뒤 PC통신으로 전송했다고 회고했다. 그 독자가 그리워했던 것은 ‘정치인이 되기 전 순수했던 안철수’였을지 모른다.
대선 엿새 전 사라진 후보
2022년 3월 3일 새벽.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엿새 앞두고 대형 정치뉴스가 터졌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과 국민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의 단일화였다. 두 사람은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마지막 TV 토론에서 경쟁을 벌였다. 국민의당에서도 직전까지 단일화 가능성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권은희 당시 원내대표는 “단일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예상과 달리 물밑에서는 단일화 협의가 있었다. 두 후보는 TV 토론 직후 심야 회동 끝에 단일화에 합의했다. 공식 발표 시점은 3월 3일 오전 8시였다.
이날 안철수는 후보직을 내려놓고 윤석열을 지지하기로 했다. 대선 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하고 인수위원회와 공동정부 구성까지 협의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두 사람은 스스로 ‘원팀’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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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3일 오후 8시 20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안철수는 “후보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을 야권 단일후보로 인정한 셈이었다. 직전까지 단일화 방식을 놓고 양측은 치열한 협상을 했다. 다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안철수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2012년에는 진보 후보 문재인이 단일후보로 남았고 2022년에는 보수 후보 윤석열이 단일후보로 남았다. 두 단일화의 한 축에는 모두 안철수가 있었다.
첫 정치 행보는 ‘양보’
안철수가 정치권의 중심으로 들어온 때는 2011년이었다. 2009년 무릎팍도사 이후 안철수 열풍이 불었고 정치권의 러브콜이 있었다.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무소속 출마 가능성이 알려지자 정치권이 술렁였다. 당시 그는 의학 연구자 출신의 벤처기업가이자 대학교수, 청년 멘토였다.
이 같은 예상에도 안철수는 출마하지 않았다. 대신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양보’라고 했다.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안철수만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이 그의 정치 역정 내내 따라붙을지 그때는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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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에서 잇달아 후보직을 양보하거나 내려놓았지만 안철수의 정치적 존재감은 오히려 커졌다.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끝까지 갔다. 정치 신인으로서는 높은 수준인 60.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후 독자 세력화를 추진했지만 2014년 방향을 틀었다. 당시 민주당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고 김한길과 공동대표가 됐다. 하지만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된 문재인 측과 당 혁신 방향을 놓고 갈등했고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나온 안철수는 본인이 바랐던 제3지대 정치를 시작했다. 2016년 2월 국민의당이 출범했고 두 달 뒤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25석과 비례대표 13석을 얻었다. 모두 합해 38석이었다. 정당득표율도 26.7%로 더불어민주당의 25.5%를 웃돌았다. 초록색 당색을 배경으로 안철수가 두 팔을 들어 올린 모습은 더 이상 ‘청년 멘토’나 ‘정치 유망주’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단일화와 제3지대의 한계
2017년 대선은 그의 정치인생에서 중요한 시험대였다. 2012년과 달리 그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정당이 있었다. 2011년 처음 정치권에 등장했을 때와 비교하면 신선함이 줄었지만 독자 후보로 완주할 수 있는 기반은 훨씬 강해져 있었다. 실제 안철수는 후보직을 내려놓지 않았다. 초반 기세도 좋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을 위협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기세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전통적인 거대 정당에 지지세력이 결집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지리멸렬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보수 유권자들도 홍준표 후보에게 결집했다. 결국 안철수는 문재인과 홍준표에 이은 3위로 그해 대선을 마무리했다. 컴퓨터와 기업의 세계와 달리 정치권은 예측하기도 대비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실 정치의 쓴맛을 본 안철수는 유승민이 이끌던 바른정당과 합치기로 했다. 소수 정당의 한계를 절감했던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지만 이후 항로는 예상을 빗나갔다. 바른미래당으로 출범했지만 이후 분열을 겪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는 패배하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2020년 1월 귀국한 뒤 그해 2월 다시 정당을 만들었다. 그 이름을 국민의당이라고 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에 집중해 비례대표 3석을 확보했지만 2016년 38석과 비교하면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제3지대 정당의 규모는 크게 축소됐다.
이때부터 안철수와 국민의힘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대표적이다. 안철수는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오세훈과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하기로 했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오세훈이 승리했고 안철수는 승복했다. 이후 오세훈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그의 당선에 힘을 보탰다.
2022년 대선도 비슷한 구도로 가는 듯했다. 국민의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보수 후보 단일화 예상은 꾸준히 나왔다. 실제 안철수는 2월 13일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 단일화를 먼저 공식 제안했다. 윤석열 측과 방식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2월 20일에는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 2월 28일부터 윤석열과 안철수의 이름이 함께 들어간 투표용지 인쇄도 시작됐다.
하지만 마지막 TV 토론이 열린 3월 2일 안철수 측에서 다시 회동을 타진했다. 두 사람의 심야 회동 끝에 단일화가 성사됐다. 그렇게 안철수는 제3지대 정치인에서 국민의힘 정치인으로 이동하게 됐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안철수는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됐다. 정권 인수 과정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초대 국무총리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안철수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았다. 4월 18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공식 합당했고, 국민의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1년 거대 양당 밖에서 새로운 정치를 모색했던 안철수가 보수 정당의 구성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국민의힘 정치인
인수위와 합당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새 정부 조각 과정에서 이른바 ‘안철수계’ 인사들의 추천과 반영을 놓고 윤석열 당선인 측과 안철수 측 사이에 이견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와 함께했던 국민의당 출신 정치인들의 진로도 제각각이었다. 광주 출신 국민의당 의원이었던 권은희가 그 예였다.
하지만 안철수는 탈당하거나 독자세력을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국민의힘 내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기로 했다. 2022년 6월 성남 분당갑 보궐선거에 출마해 62.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3선 의원이 된 안철수는 2023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때도 안철수는 2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듬해인 2024년 총선에서 살아남은 안철수는 4선 의원이 됐다. 그의 존재감이 다시 크게 드러난 때는 2024년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이었다.
12월 7일 첫 번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와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했다.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퇴장한 가운데 안철수는 자리를 지켰다. 이후 김예지·김상욱 의원도 돌아와 국민의힘에서는 모두 3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안철수는 자신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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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조기 대선에서 안철수는 국민의힘 당내 2차 경선까지 올라갔지만 최종 경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는 결과 발표 뒤 “국민과 당원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제는 엄연한 국민의힘 정치인이 된 셈이다.
2026년 7월 한동훈 의원의 국민의힘 복당 문제를 놓고는 “이제 우리 당에는 얼씬도 하지 말기 바란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어느샌가 당내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선 모습이다.
정치가 가린 안철수
2000년대 한국 축구계 판타지 스타 안정환이 이제는 방송인으로 각인된 것처럼 안철수는 의학 연구자나 벤처사업가가 아닌 정치인으로 고정됐다. 반대자들의 비판을 늘 받을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숙명 탓에 안철수에 대한 평가도 갈릴 수밖에 없다.
그의 정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거대 양당 체제 밖에서 제3당을 만들고 다당제 정치의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반대편에서는 반복된 후보 사퇴와 창당·합당으로 일관된 정치 기반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도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직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는 고민은 어느 정도 해소된 듯하다.
아마도 ‘정치인 안철수’라는 굴레를 벗게 된다면 안철수에 대한 진정한 평가도 가능할 것 같다. 정치인이 되기 전 그의 성취는 분명히 남아 있다. 그가 창업한 안랩은 한국의 대표 보안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안철수는 현재도 최대주주다. 2026년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은 1257억1736만원으로 현역 국회의원 중 가장 많았다. (거액의 부자 정치인 중 재산 출처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일 것이라고 본다.)
딸 안설희 씨는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수학과 화학을 공부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이론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UC샌디에이고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던 2021년에는 소속 연구팀의 코로나19 델타·오미크론 변이 관련 연구가 뉴욕타임스에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주목받았다. 2022년 대선 당시 유독 ‘잘 키운 자식’으로 다른 후보들과 비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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