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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경제 수장들은 미국 기업들의 부담 증가와 국제적 반발을 고려해 점진적인 관세 인상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통해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율 관세 부과와 관련해 내부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과 금융 시장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관세 옹호론자이지만…강도와 속도에 이견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 지명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지명자 모두 기본적으로는 ‘관세 옹호론자’다. 이들은 모두 관세를 적극적인 경제·외교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보호무역주의적 기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과의 무역 분쟁이 다시 심화할 수 있고, 특정 산업에 대한 관세 조정이 미국 내 제조업 및 공급망 재편 전략과 맞물려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베센트 지명자는 지난 16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중국 등 다른 나라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바로잡고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관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관세는 산업이나 국가별로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협상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직접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경제정책을 조정하고 분석하는 콘트롤타워인 만큼 러트닉 지명자와 머리를 맞대 관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러트닉 지명자 역시 관세를 협상 전술로 사용하는 것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무역 협상과 국내 산업 보호를 총괄하면서 관세 정책의 ‘차르’(총괄 책임자)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러트닉 지명자는 무역협상을 주도하는 무역대표부(USTR)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도 부여받았는데, 상무부의 관세부과 카드를 무기로 각국의 무역장벽을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관세의 구체적인 밑그림은 미런 지명자가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해 12월 지명 직전인 11월 말 ‘글로벌 거래 시스템 재구성을 위한 가이드’ 보고서를 통해 관세정책 방안을 제시했다. 미런 지명자는 해당 보고서에서 즉각적인 관세 충격을 완화하게 위해 매월 2%씩 단계적으로 관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적의 보편 관세율은 20%이고, 최대 50%까지 올려도 미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미런 지명자는 안보 및 무역 우호국에는 낮은 관세율을, 중국처럼 불공정 무역을 조장하는 국가에는 높은 관세율을 부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결국 핵심은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 정책을 점진적으로 쓸지 아니면 초반부터 고율 관세를 매겨 강하게 협상 드라이브를 구사할지 여부다. 만약 미런 지명자의 주장처럼 점진적으로 관세율을 올릴 경우 시장에 대한 충격을 일부 줄일 수 있다. 다만 러트닉 지명자는 처음부터 강력하게 고율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베센트 지명자는 금융안정을 중시하는 만큼 경제수장 간 조율이 물 흐르듯이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삭소 캐피털마켓츠의 차루 차나나 전략가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100일 동안 많은 것이 걸려 있으며, 주목해야 할 핵심은 관세의 규모와 타겟팅이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방안 중 하나로 달러 약세 카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런 지명자는 보고서에서 관세를 인상하더라고 달러 강세가 유지될 경우 가격 상승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 플라자합의와 같은 ‘마러라고 합의’를 체결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를테면 무역파트너국가들에게 미국의 초장기 국채를 매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외국 정부가 미 국채를 매입하면, 달러 공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달러 가치 하락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런 지명자는 무역파트너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후, 이를 협상 도구로 활용해 마러라고 합의 체결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베센트 지명자는 강달러를 선호하고 있어 이 방안이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마러라고 합의는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때문에 기축통화로 활용되는 달러의 지위를 무너뜨릴 수 있다. 베센트 지명자는 청문회에서 미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유지되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