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고 1조1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안건을 의결했다. 유상증자는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정 발행가액은 1주당 14만3800원으로 신주 발행 수는 819만주(증자 비율 8.7%)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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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상증자 배경으로는 정유사업 업황 악화에 따른 수익 감소가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고유가로 연간 영업이익이 4조원에 육박하는 등 역대급 실적을 냈지만, 마지막 4분기에는 정유사 수익의 바로미터인 정제마진 하락으로 764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었다. 올 1분기 영업이익 3750억원으로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전년 동기(1조6491억원) 대비 77.3%나 벌이가 줄었다.
특히 올 들어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인 4~5달러대에 머물면서 실적 부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의 부채는 지난해 말 43조9766억원에서 올 1분기 말 47조4093억원으로 증가했으며 부채비율은 193.4%까지 올랐다.
이처럼 자금 사정이 악화하고 있으나 신성장 투자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회사의 카본 투 그린 혁신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사업 전환 가속화를 위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소·암모니아, 연구개발(R&D) 역량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유상증자는 시설자금에 4185억원, 채무 상환에 3500억원, 타 법인 증권 취득에 4092억원이 각각 사용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래 먹거리로 수소·암모니아 분야를 낙점하고 암모니아로 연료전지를 만드는 미국 현지 스타트업 아모지에 3000만달러(약 390억원)를 투자해 기술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SMR 분야에선 미국 테라파워와 손을 잡았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8월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약 3200억원)를 투자했다. 테라파워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에 345MW(메가와트)급 실증 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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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뿐 아니라 다른 정유사들도 유가 등락에 따라 실적 부침이 심한 정유사업 의존도를 줄이고자 대규모 투자를 벌이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12월 창사 이래 가장 큰 금액인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라남도 여수2공장 인근에 올레핀 생산 시설(MFC)을 준공했다. 올레핀은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합성고무의 기초 소재로 쓰여 ‘석유화학산업의 쌀’로도 불린다.
에쓰오일(S-OIL)은 사업 다변화를 위해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 정유·석유화학 스팀크래커(기초유분생산설비)를 건설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최대 320만톤(t)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HD현대오일뱅크의 경우 화이트 바이오 사업 진출을 위해 올해 대산공장 1만㎡ 부지에 연산 13만t 규모의 바이오 디젤 제조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대산공장 내 일부 설비를 연산 50만t 규모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 생산 설비로 전환한다. HVO를 활용해 2025년 상반기 바이오 항공유 생산 공장을 구축, 연간 50만t 생산에 나선다는 목표다. 대산공장에서 2026년 상용화를 목표로 화이트 바이오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 케미칼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친환경 발전 사업에도 진출한다. HD현대오일뱅크 발전 자회사인 HD현대E&F는 2025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290MW 용량의 발전 설비를 구축한다. 해당 발전소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 약세와 세계 각국의 친환경 정책 강화로 탈석유 기조가 이어지면서 정유사들의 ‘탈정유’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라며 “정유사업 의존도를 낮춰 경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신사업에 대규모 투자하는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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