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이마트(139480) 은평점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김용민 씨(이하 가명)의 얼굴엔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씨의 카트에는 한 달은 족히 먹고 쓸 수 있는 식음료·생필품이 가득 담겼다. 그가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인파에 치이면서도 이마트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듣지 않아도 알 법했다. 살인적 고물가가 만들어낸 대형마트 이색 풍경이 2022년 마지막 날까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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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는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연말·연시를 맞아 대대적 할인 행사 ‘데이1(DAY1)’을 실시했다. 지난해 11월 SSG랜더스의 KBO리그 통합우승을 기념해 3일간 진행한 할인 행사 ‘쓱세일’의 후속편 격이다.
지난달 31일 직접 찾아가본 은평점은 개점(오전 10시) 40분 전인 9시 20분부터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한 개 차로가 비상등을 켠 채 줄지어선 차량들로 ‘장관’을 이뤘다. 9시 40분께 겨우 주차를 하고 건물로 들어섰지만 매장까지 들어가 카트에 첫 상품을 담기까지 25분이 더 걸렸다.
상당수 고객들은 단 10여분 만에 카트를 가득 채우는 모습을 연출해 이목을 사로잡았다. 앞선 ‘쓱세일’ 당시 대란을 경험했던 고객들로 이미 전단지를 통해 할인 대상 상품과 할인률을 모두 계산해 구매할 리스트를 정하고 온 이들이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은평점을 찾은 30대 주부 박미란 씨는 “쓱세일 때 보니 쇼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계산 줄이 더 길어지더라. 미리 살 것들을 적어왔다”며 답변을 하는 와중에도 이미 ‘피코크’ 밀키트로 가득 채워진 카트에 시금치와 딸기 등 신선식품들을 바삐 담았다. 이날 피코크 밀키트는 ‘2개 구매시 50% 할인’, 겨울시금치는 ‘1+1’, 딸기는 신세계포인트 적립시 4000원 할인 등 큰 폭의 할인혜택을 부여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자 지하 1층과 지상 1층 계산대 앞으로 실제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11시 30분께 줄을 서 계산을 마치기까지 20여분이나 걸렸다.
특히 이날 ‘제휴카드 결제시 40% 할인 혜택’이 주어진 브랜드 한우는 줄을 서 상품을 접하기까지 무려 1시간 10분이 걸렸다. 오전 11시 10분께 한 직원의 “등심 물량이 거의 소진되고 있다”는 말이 돌자 줄지어선 고객들이 불안에 떠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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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연달아 진행된 한 대형마트의 할인 행사가 모두 대박을 친 데에는 최근 전 국민을 시름에 빠지게 한 고물가 상황이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은평점에서 만난 대부분의 고객들이 큰 폭의 할인 혜택을 누리면서도 한숨 섞인 불만을 쏟아낸 이유이기도 하다.
30대 초 김형택·김인영씨 부부는 “지난번 쓱세일 때 아침 일찍 두 시간 쇼핑하고 나서 피곤해서 토요일 하루를 모두 날려버렸다”며 “그래도 연말·연시 그럴듯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이번 행사에도 장을 보러 나왔다. 하지만 발 밟히고 카트에 여러 번 치이고 힘들다”고 했다. 이어 “물가가 비싸니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인기 상품 ‘이판란(30구×2판·9980원)’ 행사 장소에서는 고객들간 쟁탈전 양상까지 빚어져 직원이 “그러다가 깨진다”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서둘러 이판란 2개 구매에 성공한 30대 직장인 강지연 씨는 “힘들어서 같이 못 온 어머니께 나눠 드리려고 많이 샀다”고 설명했다.
다음 날인 1일 다시 은평점을 찾아야 한다며 걱정하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이른바 ‘단 하루’ 할인 행사 품목 때문이었는데 물가가 워낙 비싸니 할인하지 않는 일반 상품을 대체해 구매하기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과 함께 은평점을 찾은 70대 어르신 김창원 씨는 “한우를 사려고 왔는데 40% 할인을 해도 비싸다고 느꼈다. 국내산 돼지고기로 대체하려 했더니 그건 내일 행사라더라”라며 “할인혜택이 없으면 너무 비싸 내일 다시 와봐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1일에만 할인 판매하는 봉지라면, 파머스픽 감귤 매대 앞에서도 상품을 집어들었다가 내려놓는 고객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한편 이마트는 이번 데이1 행사 기간 고객과 직원의 안전 관리를 위해 각 점포별 직원이 전원 비상근무를 펼쳤다. 이날 은평점의 경우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오전 11시 5분께부터 입장 인원을 제한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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