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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4번째 상용화"…韓, 고속열차 선진국으로 '우뚝'

신민준 기자I 2022.05.09 10:58:16

정부, 2027년까지 1.1조 규모 3세대 고속철도 차량 발주 계획
고속열차 국가기밀로 관리…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성공
고도 기술력 요구·정보 습득도 어려워…제한된 납기 등 변수도

[이데일리 신민준 기자] 정부의 차세대 고속열차 도입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 4번째 고속열차 상용화 국가가 되기까지의 뒷이야기가 재조명 받고 있다.

KTX 산천(SRT, 왼쪽)과 KTX 이음(오른쪽). (사진=현대로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KTX-이음에 첫 적용

9일 현대로템(064350) 공식 블로그에는 ‘KTX 개발비화! 한국산 고속열차 개발 Story’라는 글이 게재됐다. 처음 국산 기술로 고속열차가 제작되는 과정부터 현재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가 탄생하기까지 개발 과정을 풀어놓은 글이다. 동력분산식이란 모든 차량에 동력원을 분산 탑재하는 방식으로 가·감속 성능이 뛰어나 3세대 고속철도 차량인 ‘KTX-이음’에 첫 적용됐다. 이는 전 세대인 KTX-산천에서 열차의 양 끝에만 동력원을 탑재하는 동력집중식을 채택했던 것과 다른 점이다.

최근 정부는 최고시속 320km의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차량 EMU-320(KTX-이음)을 2027년까지 25편성(200량) 발주할 계획을 내놓으면서 전국 주요 도시를 2시간 생활권으로 묶는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번 발주 물량은 약 1조1000억원 규모로 수원·인천발 KTX와 평택~오송 구간 남부내륙선에 차례로 투입될 예정이다.

고속철 시대 개막이 이처럼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지만 막상 고속열차 개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국내 개발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 고속철도 차량 제작사인 현대로템에 따르면 국내 고속열차 역사는 토종 기술로 상용화에 처음 성공한 KTX-산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TX-산천은 지난 1994년 프랑스에서 기술이전을 받아 제작한 연구개발 차량인 HSR-350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고속열차다. KTX-산천은 2008년에 첫 편성 출고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4번째로 고속열차를 개발하고 상용화한 국가가 됐다.

첫 고속열차 개발 착수 당시 국내에는 설계나 제작, 노하우 등 고속열차 상용화를 위한 기술력과 산업적 기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기술을 이전한 프랑스 연구진조차도 우리나라의 고속열차 국산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할 정도였다. 하지만 국내 연구진은 이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더 많은 추가적인 연구를 거쳐 비로소 차량을 실물로 구현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로템은 국산 고속열차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세대 고속열차인 KTX-이음 개발에도 나서게 된다. KTX-이음은 동력집중식인 KTX-산천과는 다른 동력분산식이었기 때문에 또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했다.

현대로템은 또 지난 2012년 국책과제로 개발된 연구개발 차량인 HEMU-430X를 통해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기술을 확보한 이후에도 실제 승객을 태우고 운행해야 하는 양산 차량을 만들어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을 마주해야 했다. 소음이나 진동, 안전성 등 연구개발 차량과 다른 철도안전법 기술기준을 충족하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신규 차종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거쳐 제작·시험 거듭해 신규 차종 개발

이처럼 신규 차종을 개발하고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른다. 제한된 기간 안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까지 끝마쳐야 하는 데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고속열차는 다른 국가에서도 기밀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을 거쳐 실제 제작과 시험을 거듭하며 기술을 하나씩 체득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 셈이다.

KTX-이음의 기반이 된 연구개발 차량 HEMU-430X를 제작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어려움이 잘 드러난다. 당시 HEMU-430X는 공기 마찰을 고려해 주행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이상적인 기준치로 설계와 제작에 들어갔지만 이론과 실제 주행 시험 결과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결국 공기의 흐름을 개선하는 하부 대차와 차량 옥상 덮개의 위치 등을 변경하면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시험해보고 나서야 최적의 설계를 진행할 수 있었다. 검토할 외부 변수도 다양하다. 신규 차량이 철도안전법 기술기준에 충족하는 지 와 영업운행 투입 전 형식 승인이 가능할 지 여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제작 기간 자체가 짧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감사원이 지난 2012년 펴낸 ‘KTX 운영 및 안전관리실태’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KTX-산천은 당시 국내 신규 개발 차종 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사례 대비 제작기간과 시운전이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고속철도 차량인 떼제베(TGV)는 제작기간 60개월에 시운전 거리는 20만km에 달했지만 KTX-산천은 제작기간 36개월에 시운전 거리는 6000~1만2000km에 그쳤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신규 철도차량 개발과 양산에 여러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동안 축적한 역량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우수한 품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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