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태호기자] 세계 자동차 시장에 도요타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올들어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의 몰락세가 속도를 더하고 있는 가운데 시가총액이나 수익성 면에서 다른 기업을 압도해온 도요타가 내년이면 생산량에서도 세계 1위 등극이 확실시 되고 있있다.
도요타가 내년에 총 92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GM을 앞지를 것이라는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는 미국 중심의 세계 자동차 시장이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요타는 포드를 제치고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한 지 불과 2년만에 GM마저 따돌리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게 됐다.
도요타는 2006 회계연도(2006년 4월~2007년 3월)에 전 세계에서 올해보다 90만대(12%) 많은 8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계열사인 다이하쓰와 히노의 생산분을 합할 경우 총 생산대수가 920만대를 웃돌 것이란 얘기다. 반면 올해 912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할 전망인 GM은 판매부진으로 내년 생산량이 올해를 밑돌 전망이다.
지난해 도요타의 매출은 18조5500억엔으로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보다 2조엔 정도 적었다. 그러나 순이익과 시가총액은 `빅3(GM, 다임러크라이슬러, 포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아 이미 세계 정상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현재 12% 수준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2010년까지 15%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도요타는 현재 텍사스에 건설중인 새 공장에서 연간 20만대의 픽업트럭 쏟아내면서 생산확대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중국에서의 생산능력도 광저우 공장 완공과 더불어 연 34만대로 1만대 늘어날 예정이며 태국, 남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도 저가 모델의 생산을 공격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도요타 그룹은 러시아 공장 신설과 더불어 자동차 생산대수가 2007년엔 연간 980만대에 이르고 2008년엔 10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 중심 `미국에서 아시아로`
도요타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주도권을 미국에서 아시아로 이동시키는 핵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빅3`가 비효율적인 경영방식과 매출감소로 신용등급이 `정크(투자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강등되는 동안 도요타를 중심으로 한 일본과 아시아 업체들은 세계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해온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은 높은 인건비와 후발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거 30%를 웃돌던 GM의 미국 시장 점유은 최근 20% 초반으로 곤두박질치는 수모를 겪었고, 포드도 계속되는 점유율 감소로 고전하고 있다. 특히 유가 상승 영향으로 주력 차종인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의 판매가 급감하면서 최근 미 업체들이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도이체 방크의 애널리스트인 로드 라쉬는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미국 업체들의 매출이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으며 GM의 경우 10월 미국 시장 점유율이 1980년 이래 최저인 20.5%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GM은 지난해 동월보다 24% 줄어든 34만9202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포드도 SUV와 트럭 판매량이 28% 급감하면서 9월 북미지역 자동차 판매량이 총 22만8157대로 전년 동월 대비 19% 하락했다.
반면 도요타는 북미시장에서 10.3% 증가한 17만8천417대의 자동차를 판매했고,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는 8193대로 1년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급차종인 렉서스 SUV 판매도 3.6% 뛰었다. 같은 기간 일본 2위 자동차업체인 닛산의 자동차 판매대수는 16.4% 늘어났으며 3위 혼다도 11.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UBS 증권은 `도요타가 자동차 시장에 파란을 몰고 오고 있다(Toyota rattles the auto market)`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효율적인 경영과 뛰어난 전략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는 반대로 빅3의 시련은 단기간 내 해결될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달초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는 GM과 포드의 신용등급을 추가로 하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요타에 `AAA`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S&P는 지난 5월 초 GM과 포드의 등급을 각각 `BB`와 `BB+`로 강등했다.
◇높은 마진률·하이브리드 혁명 주도
도요타 자동차의 약진은 업계 최고 수준의 생산 효율성 덕분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해 실적을 기준으로도요타는 차량 한대를 팔 때마다 15만8000엔이 남는 반면, GM은 4만3000엔으로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차량당 평균 판매가격 역시 도요타가 250만엔으로 GM의 225만엔보다 높다. 도요타가 GM보다 더 많은 소형차를 판매했음에도 평균 판매가격이 높은 것은 그만큼 브랜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 생산성도 매우 뛰어나다. 매년 업체별 자동차 생산성을 분석하고 있는 하버 리포트는 도요타가 지난해 차량 한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평균 노동시간을 `19.5`시간으로 전년보다 5.9% 축소시켜 업계 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위는 닛산(18.3), 3위는 혼다(20.6)로 상위 3사가 모두 일본업체들이다.
도요타는 판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현지 생산 확대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1980년 9개국에 11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던 도요타는 1990년에는 14개국 20개 공장, 2005년 현재는 26개국에 걸쳐 46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도요타의 해외 생산은 내년에 400만대를 넘어서면서 처음으로 일본 내 생산을 추월할 전망이다.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의 성공도 도요타식 환경 경영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연비성능 개선을 거듭한 프리우스는 미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도요타 제품들에 대한 연비 의식을 크게 개선시켰으며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하이브리드 시장에서도 도요타가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해줬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는 당분간 도요타의 독주를 막는 업체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P의 에프라임 레비 애널리스트는 "과거의 도요타는 경쟁력이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 많은 장점과 더불어 생산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모든 것이 도요타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