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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힘입어 시 주석은 지난 8일 리야드의 왕궁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양국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2년마다 양국에서 번갈아가며 ‘셔틀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녹색 에너지,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292억6000만달러(약 38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34건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석유 증산를 위해 사우디를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것과 대조적이다.
사우디는 지난 80년 동안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었다. 당시 안정적인 석유 수급을 원하는 미국과 안보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우디의 이해가 일치했다. 하지만 최근 역내 미국의 안보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사우디는 이 같은 관계에서 벗어나 중국 등과 다각화된 관계를 맺고자 하고, 중국 또한 사우디와 안보 및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을 원한다고 CNN는 분석했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으로, 사우디가 최대 공급국이다. 역내 미국의 줄어든 안보 영향력, 이란의 늘어나는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사우디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기 공급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시 주석은 9일 중국-GCC 정상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향후 3∼5년간 금융, 과학기술, 우주 등 분야에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석유 및 가스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요청했다. 사우디는 관행적으로 미국의 안보 보장을 대가로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했고, 이 ‘페트로달러’ 시스템은 미국의 달러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됐다. 즉, 여기서 벗어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위안화 지배력을 강화하고 미 달러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동 정치·경제 평론가인 알리 시하비는 “사우디가 가까운 시일 내 ‘페트로달러’를 포기하지 않겠지만, 사우디의 최대 고객으로 중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한다면 사우디는 궁극적으로 위안화 결제를 거절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이번 방문에 대해 미국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으나, 불안감이 커졌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샤오진 차이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대학교수는 “시 주석의 이번 방문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중동에서 실질적으로 확대되진 않았으나,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해서 쇠퇴한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