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단일 기획감독으로는 최대규모인 91억원의 체불액을 적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간 보호의 사각지대였던 재직자의 임금체불을 들여다 본 결과다. 정부는 상습적인 임금체불에 단호한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무엇보다 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수 있는 법 통과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고용부가 대대적인 기획감독을 벌인 이유는 ‘노사 법치주의’ 확립 때문이다. 임금체불이 지난해보다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 이번 감독의 배경이 됐다. 올해 8월 말 기준 체불임금은 1조 141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615억원(29.7%) 증가했다. 체불 피해 근로자도 지난해보다 14.1% 늘어 18만명에 달한다.
상습체불 의심 기업이 이번 기획감독의 표적이 된 이유는 임금 체불이 체불을 단순 채무불이행 등으로 생각하는 사업주의 낮은 인식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했다. 또 근로자 입장에서 회사에 재직하고 있는 동안엔 임금체불을 신고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바탕이 됐다. 근로자가 퇴직하면서 체불을 신고한 기업에 숨은 체불임금이 더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감독 결과,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청년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중소규모의 IT 벤처기업, 제조업, 병원 등에서 상습적으로 다수의 근로자에 대한 고액 체불이 적발됐다. 소프트웨어 개발 중소벤처기업인 A사는 업황 부진, 투자유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1년간 근로자 25명의 임금과 퇴직금 총 17억원 체불했다. 애니매이션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인 B사는 캐릭터 사업 해외 매출채권 회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5개월간 근로자 36명의 임금 및 퇴직금 총 6억8000만원 체불했다.
사업주가 노동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습적으로 체불한 사례도 다수였다. 사업주가 자의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거나 각종 수당을 법정 기준보다 적게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은 사례들도 적발됐다. 이같은 사례도 적발된 액수도 13억여원에 달했다.
건설업에서도 임금 체불이 만연했다. 주로 하도급업체에서 건설경기 악화, 원자재가격 상승,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퇴직공제부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례였다. 고용부와 국토교통부가 합동으로 점검한 12개 건설현장 중 6개 현장에서도 불법 하도급과 임금 직접지급 위반이 적발되기도 했다.
고용부는 이번 기획감독을 계기로 재직 근로자의 임금체불 피해를 해소하고자 ‘임금체불 익명신고센터’를 오는 11일부터 31일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또 불시 기획감독을 강화하고, 건설현장에 대한 근로감독도 향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일각에선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 강화도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습체불 사업주를 대상으로 신용제재, 정부 등 보조·지원 제한, 공공입찰 시 불이익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법안과 체불사업주의 자발적인 청산을 지원하기 위해 융자요건을 완화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체불액의 80%를 차지하는 반복·상습 체불 제재를 강화하는 근로기준법과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민생에 직결되는 법률인 만큼 국회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 통과하길 요청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