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흐름 따르는 로터스…첫 전기 세단 ‘에메야’ 타보니
정숙성·안정성 모두 잡아…고급 사양·디지털 경험 완성도↑
‘결핍의 미학’ 대신 ‘풀옵션 전동화’…감성·정체성은 어디에
잘 만든 전기차 vs 로터스 다움…에메야가 던진 질문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이 거세다. 현대자동차와 토요타 같은 대중 브랜드는 물론, 전동화에 냉소적이었던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콧대 높던 유럽 슈퍼카 브랜드들까지 자존심을 내려놓고 전기차 모델을 속속 내놓고 있다.
 | | 로터스 에메야 (사진=로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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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통의 경량 스포츠카 명가 ‘로터스’ 역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피하지 않고 순응하기로 했다. 로터스가 브랜드 최초로 선보인 순수 전기 하이퍼 GT 세단 ‘에메야(Emeya)’를 타고 서울 강남 플래그십 전시장부터 경기 가평까지 약 60km 구간을 달려봤다.
로터스는 아직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생소한 브랜드다. 그런 와중에 에메야는 외관부터 쉽게 잊히지 않는 독보적인 희소성과 매력을 드러낸다. 각짐과 곡선이 교차하는 낮고 날카로운 실루엣, 현대적 하이퍼카의 인상은 ‘하차감’을 확실하게 보장한다.
 | | 로터스 에메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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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곳곳에 뚫린 8개의 공기 통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공기를 차체 내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다운포스를 형성하고, 동시에 냉각 효율까지 끌어올린다. 가변형 프론트 그릴과 리어 스포일러가 주행 상황에 따라 스스로 척척 움직이는 모습은 이 차가 단순한 탈것을 넘어 살아있는 기계 같다는 느낌을 준다.
전장 5.1m가 넘는 거구임에도 공기역학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낮고 날카로운 실루엣 덕분에 차체는 실제보다 작게 응축된 듯한 느낌을 준다.
 | | 로터스 에메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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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밀어 넣었다. 공조 장치 레버와 변속 스위치에 적용된 금속의 가공 품질이 정교해 손 닿는 모든곳이 ‘과연 비싼값을 한다’는 감상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휠베이스가 3m를 넘는 만큼 뒷좌석 공간 역시 넉넉하다. 무릎 공간은 웬만한 대형 세단과 맞먹고, 뒷좌석 전용 터치스크린과 전동 조절 시트까지 갖춰 이동 중 휴식 공간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언리얼 엔진 기반 하이퍼 OS가 적용됐다. 화면 속 차량 그래픽은 실제 주행 상황과 날씨에 맞춰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UI 구동은 지연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 | 로터스 에메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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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는 영국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KEF가 맡았다. 실내는 단순한 이동 공간을 넘어 하나의 콘서트홀을 방불케 하고, 실제로 일부 오너들은 이 차를 음악 감상 부스, 영화관으로도 사용한다고도 한다. 강력한 노이즈 캔슬링 기술 덕분에 시속 100km를 넘어도 실내는 도서관처럼 조용하다.
주행 성능 역시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4륜구동 시스템과 액티브 에어로 다이내믹스의 조합은 고속 코너에서도 차체를 노면에 찰싹 눌러붙게 만든다. 고속도로 진출입 구간에서는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 | 로터스 에메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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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로터스는 차량에 공조 장치조차 넣지 않을 정도로 극단적인 경량화와 순수한 주행 감각을 추구하던 브랜드였다. 차체 무게를 1g이라도 줄이기 위해 모든 것을 덜어내는 이른바 ‘결핍의 미학’이 브랜드의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에메야는 현실과 타협하고 그 정반대에 섰다. 실제로 타보면 그냥 시류를 따라 완성도를 높인 전기차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각종 편의·고급 사양으로 무장한 구성은 분명 흠잡을 데 없지만, 그 과정에서 로터스 특유의 날것의 감성과 철학은 상당 부분 희석됐다.
 | | 로터스 에메야 (사진=로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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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주행을 이어가며 느껴지는 감정은 복합적이다. 잘 만든 차다. 빠르고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이 차가 꼭 로터스여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답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로터스 엠블럼을 가린다면 과연 이 차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반대의 사례로 현대차 제네시스는 고성능 전기차 ‘마그마’에 가상 변속 충격, 액티브 사운드 등 기술을 적극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전기차의 정숙함을 일부러 깨뜨리면서도 소비자·마니아들이 추구하는 내연기관 스포츠카의 재미·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 | 로터스 에메야 (사진=로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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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야는 완성도 높은 전기차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험의 차별화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옅게 느껴진다. 전동화 흐름에는 충실하게 올라탔지만 그 과정에서 브랜드 고유의 색채는 희미해졌다.
전동화라는 거대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다만 그 안에서 브랜드만의 고유한 개성과 가치관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에메야는 고민거리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