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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트럼프 "韓작가 연 4만종 저술"…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

채상우 기자I 2017.11.14 09:03:21

지난해 출간한 순수문학 작품 8442종에 불과
국내 전체 출간물 규모와 혼동한 것으로 추측
트럼프 말과 달리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
독서율·작품당 평균 발행 부수·출판 매출 ↓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 이틀째인 8일 국회를 찾아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작가들은 연간 약 4만종의 책을 저술한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이후 24년 만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한국 작가들은 연간 약 4만 종의 책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국회에서 한 연설 내용이다. 자리에 있던 295명의 국회의원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언론은 ‘대한민국 근현대사 강의’ ‘취임 후 최고의 연설’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국민 역시 감동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전부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내용만큼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출간한 국내 순수문학 작품은 8442종이다. 한국 작가들이 4만종의 책을 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한국에서 출간하는 모든 출판물 수와 혼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서와 잡지, 기타 모든 출판물을 모두 합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던 4만종을 웃도는 수치가 집계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문학 수준을 추켜세우기 위한 의도로 말했지만, 한국문학의 내실은 그의 생각과 달리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2016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출판업 매출은 4조278억원으로 4.8% 줄었다. 출판업 종사자도 3.7% 줄어든 2만8483명으로 집계했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참고서와 학습지, 전집 등이 차지한다. 순수문학 비중은 0.2% 미만이다.

작가들은 불안정한 창작 환경 속에서 글을 쓰고 있다.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글을 쓰는 작가들이 창작활동으로 버는 수입은 연평균 214만원에 불과하다. 시인 최영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나서도 생활고에 시달려 정부 보조금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는 작가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창작활동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문학이 이토록 어려운 첫 번째 원인은 ‘독서율 감소’에 있다. 19세 이상 성인의 34.7%는 1년에 단 한 권의 문학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으니 책을 만들 필요도 없어졌다. 작품당 평균 발행 부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독서율 문제를 해외시장 진출로 해결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마저도 녹녹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인지도가 낮고 한국문학 외국어 번역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해외진출 한계를 설명했다.

고질적인 출판계의 불합리한 유통구조도 문제다. 이로 인한 결과가 올해 초 터진 송인서적 부도였다. 송인서적은 2000여개의 출판사와 거래해온 국내 2위의 서적 도매상이다. 송인서적으로 판로를 일원화한 출판사만 500여 곳에 이른다. 송인서적 부도로 출판사들이 송인서적으로부터 받은 어음은 모두 휴짓조각이 됐다. 출판사가 송인서적에 받은 어음을 배서하는 방식으로 인쇄소 등에 결제해온 관행 때문에 송인서적의 부도 여파는 출판계 전체로 번졌다.

거기다 지난 정부에서 벌인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문학계도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은 몇몇 작가들은 지원사업에서 배제됐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과 이기성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까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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