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뉴스에 따르면, “삼성과 LG가 유럽 TV시장에서 4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기분 좋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또 미국 최고 권위의 소비자 리뷰사이트 ’Cnet’이 발표한 베스트 HDTV 14종 중 7종이 한국제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삼성이나 LG를 한국 기업이 아닌 다른 나라 기업으로 알고 있는 외국 소비자들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노키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일본 회사인줄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LG의 TV들이 생중계 화면용으로 제공되었다고 하나, 그 상품이 한국제라는 것을 모르면 남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노출빈도가 많아 국가 브랜드의 역할도 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IT 기기들이 자칫 메이드 인 재팬이나 더 불행한 경우는 메이드 인 차이나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주어야
파리 샹젤리제나 뉴욕 5번가,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성당과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등은 무언가 그곳을 찾는 이들의 기억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들을 선사한다. 이 이미지는 계절마다 다른데, 파리 상젤리제는 겨울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고, 뉴욕 5번가는 가을이 그리고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성당과 트라팔가 광장은 사계절 모두 기억에 남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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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동남아시아의 홍콩은 밤이 되면 낮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즉 빛의 교향악이라는 이름으로 네온과 레이저를 쏘는 현란한 빛의 축제가 벌어지는데, 홍콩섬의 수십 층짜리 건물들이 일제히 빛을 내뿜는 이 쇼는 크게 볼 것이 없는 홍콩의 밤을 오랫동안 기억나게 한다. 이 쇼는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처럼 미리 정해진 기획안에 따라 일사 분란한 움직임을 보인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이렇게 밤을 장식하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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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파리 상젤리제 거리의 양쪽에 루미나리아라는 이름의 노엘 장식, 즉 성탄 트리가 들어선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지속되는 이 루미나리아가 시작되면 ‘마롱퀴’라 불리는 군밤 장수도 나오고 싸늘해진 날씨에 거리를 찾은 이들은 잠시 바쁜 일상을 잊고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 빛의 터널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끝에 우뚝 서있는 조명 밝힌 개선문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개선문은 보는 사람에 따라 호감 비호감이 비교적 분명하게 구별되는 기념물인데, 밤에 조명 밝힌 개선문 앞에서는 누구나 호감으로 마음을 바꾸게 된다. 부드러운 조명으로 인해 딱딱하고 웅장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이름도, 일차대전의 무명용사를 기리는 추념의 불꽃도 그리고 중앙집권체제를 상징하는 12개의 방사선 도로도 잊은 채 부드러운 야경의 하나로 들어온 전혀 다른 개선문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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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5번가의 가을은 센트럴 파크의 진한 낙엽 냄새로 시작된다. 비에 젖은 낙엽이 나뒹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옷깃을 올리는 계절이 되면 어디선가 옛날에 본 <러브 스토리>의 음악이 들리는 것도 같다. 유명 브랜드 샵들도 가을의 색으로 장식을 바꾼다. 센트럴 파크로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하면, 남의 나라이지만 고향에 온 것 같기만 하다. 은은한 가을 향기와 늦은 오후의 5번가를 물들이는 조명은 뉴요커의 삶이 마천루에 가려진 팍팍한 삶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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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성당은 2차 대전 당시 파괴된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기념물이다. 19세기 말에 세워진 성당인데, 그만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복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으나 현재처럼 그대로 보존을 하고 그 옆에 별도의 현대식 성당을 짓기로 했다. 일본인들이 꼭 한번 가봐야 할 성당인지도 모른다. 폐허 바로 옆에 유리로 된 육각형과 팔각형 두 개의 건물을 지었는데, 유리 벽을 투과해 들어온 빛이 자아내는 황홀함은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실내에 있는 십자가는 성당이 파괴되었을 때 나온 못들을 수거해 주조한 것이라고 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모한 전쟁을 잊지 말자는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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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트라팔가 광장은 무엇보다 떼지어 몰려다니는 비둘기로 기억에 남는 곳이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비둘기 똥은 거름으로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골치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엽사를 고용하고, 모이에 독극물도 넣어보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비둘기를 퇴치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그러나 청동 사자상들이 보호하고 있는 넬슨 기념탑 위로 날아오르는 비둘기떼는 관광객들에게는 이곳만의 특별한 이미지이다.
빛을 뿜어내라
위에서 예로 든 몇몇 기념물들은 트라팔가 광장을 제외하면, 모두 빛과 관계가 있다. 현대 도시에서 빛은 가로등처럼 결코 단순한 조명의 역할만 하는 기능적 요소가 아니다. 빛은 이제 그 자체가 마치 예술가의 붓에서 나온 터치들처럼 도시 전체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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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대의 모니터를 쌓아 올린 거대한 탑모양의 작품인데,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나선형 계단을 돌아 올라가면서 보는 모니터들의 변화무쌍한 화면은 잠시 황홀한 경험을 하게 한다.
나는 이 <다다익선>을 처음 보는 순간, 다보탑이 떠올랐고 중앙박물관 홀에 우뚝 서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떠올랐다. 과천 현대 미술관의 램프 코어를 타고 나선형으로 돌아 올라갈 때는 탑돌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랬다. 백남준의 설치 미술 <다다익선>은 불탑이었고,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예술의 빛을 넘어선 종교적 의미의 빛이었던 것이다.
<다다익선>의 그 빛과 힘이 천년 전 신라와 고려인들이 탑을 세우며 표현했던 종교적인 궁극적 관심의 상태에서 온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목탁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향 내음도 맡을 수 없었지만, 1003대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하늘을 향한 인간의 염원과 간구가 실린 메시지였다.
신라의 석공들이 화강암을 다듬었고 고려의 석공들이 대리석을 다듬었다면, 백남준은 모니터를 다듬은 것이다. 소재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어느 탑이나 모두 빛을 내고 있었다. 이 빛을 보는 눈은 그러므로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신라의 선승과 만나고 고려의 스님과 만나는 것이다. 백남준은 우리 시대가 허락하는 재료를 썼을 뿐이다. 그에게 모니터는 돌이었을 뿐이다.
IT 강국 한국, 산업을 넘어 예술로 나아가야
아르마니 TV, 프라다 폰……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정도 가지고서는 삼성이나 LG 모두 겨우 일본 업체들을 견제하는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상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디자인을 넘어서는 예술이 필요한 것이다. 프라다 폰과 아르마니는 너무나 속이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나온 제품들도 보니 별로다. 제품 주기가 얼마나 빠른데, 신기술이 얼마나 빨리 도입되는데, 아르마니, 프라다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 것인가? 아니다.
21세기는 산업과 예술이 외형적으로 융합되는 시대가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 서로 섞이는 시대다. 이 트렌드를 읽어야 하며, 읽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삶과 사회와 산업 속에 받아 들여야 한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다보탑이며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다. 이 돌로 쌓은 석탑과 모니터를 쌓아 올린 TV탑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을 유럽 점유율 40%에 이르는 한국의 디지털 TV로 구현해 보면 어떨까.
청계천에 있어야 할 조형물은 올덴버그의 스프링이 아니라 바로 <다다익선>이었던 것이다. 빛의 분수가 터져 나오고, 명멸하는 평판 모니터와 굽이치는 LED의 선들이 단청처럼 혹은 다보탑처럼 하늘의 빛을 상징하지 않을까.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돌과 모니터가 만난다. 종교적 궁극의 세계와 예술적 충동의 접점이 놓이게 될 것이다. IT 강국이 되려면 아르마니, 프라다 등 네임밸류에 편승도 해야겠지만, ‘상상력’이 필요하다. 평범한 상상력이 아니라 진짜 상상력, 즉 예술과 종교가 만나는 상상력. 청계천에 물만 흘러서는 안 된다. 이 상상력이 흘러야 한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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