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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경기도 판교에서 만난 유전자분석기업 한 대표는 “규제 완화를 통해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DTC) 서비스 영역을 넓혀준다던 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꿨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DTC는 병원 등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민간기업이 소비자에게 의뢰를 받아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서비스다. 유전자분석회사에 유전자검사 키트를 주문해 우편으로 받은 후 간단한 가글이나 면봉을 이용해 입안에서 점막세포를 채취, 다시 회사로 보내면 유전자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인 서비스 방식이다. 정부는 지난 2016년 7월부터 △혈압 △혈당 △모발굵기 등 12가지 항목에 대해 유전자검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DTC 시행 이후 허용 항목이 너무 적어 실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고 시장 규모가 커지지 않는다는 업계의 주장이 나왔다. 미국·영국·일본 등에 비해 가능한 서비스가 적어 당초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유전자검사 산업 규모가 연간 10억원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것. DTC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미국·영국·일본은 약 2000만명 수준으로 추산하는 반면 국내는 10만명도 채 안되는 상황이다. DTC를 시행한지 2년이 넘었지만 제법 큰 규모의 유전자분석 기업도 아직까지 제대로된 매출이 나오지 않아 DTC 관련 매출 공개를 꺼리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 산하 ‘DTC 유전자검사 제도개선 민관협의체’는 유전자검사 인증을 받은 기업에 대해 검사 가능 항목을 늘리자는 방안을 의결했고, 수 차례 공청회 등을 거치며 서비스 항목 확대를 논의했다. 그러다 지난 8월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DTC 규제 완화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것에 이어, 지난달 25일에는 산업계를 배제한 ‘유전자항목심의위원회’를 통해 추가 허용 항목을 기존에 논의하던 100여개에서 50여개로 대폭 줄이기로 한 것. 그간 산업계와 의료계 등이 협의를 거쳐 논의한 항목 상당부분을 삭제한 것. 유전자분석 업계 한 대표는 “DTC 항목 확대를 위해 그동안 논의를 진행했는데 한 순간에 분위기가 바뀌어서 황당하다”고 털어놨다.
이에 유전자분석 관련 업계 대표들이 모인 유전체기업협의회는 이날 판교 바이오협회에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서는 지난 2016년 DTC를 허용할 당시 산업계를 포함해 함께 논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항목을 지정했으나, 이번 유전자항목심의위원회는 산업계 의견을 배제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질병에 대한 유전자분석은 병원에서만 하도록 양보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건강관리 수준에서 서비스 가능 항목을 구성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전자분석업체 한 대표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도 일부 질병과 다양한 항목에서 DTC 서비스가 가능하고,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사실상 관련 규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된 서비스를 할 수가 없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크리던스리서치에 따르면 2014년 656억원 규모이던 세계 DTC 시장 규모는 2016년 1055억원으로 61% 성장했고, 2022년에는 4053억원으로 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