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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강원도)= 이데일리 박기주 손의연 박순엽 기자] “농사 때 쓸 소가 타 죽어 버렸어요. 올해 농사는 어떻게 지을지 막막합니다.”
강원도 고성과 속초를 휩쓴 산불로 지역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농기계 등 농사에 필요한 기자재와 축산시설이 대거 산불 피해를 봤다. 이 곳을 여행하려는 심리 마저 위축되면서 주요 관광지와 상권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강원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 등에서 발생한 산불로 농기계 241대를 비롯해 종자를 보관하던 농업시설 34곳, 비닐하우스 9곳이 소실되는 등 농가 피해가 크게 발생했다. 또 축사 등 축산시설 925곳이 피해를 입어 가축 피해도 컸다. 아직 피해를 집계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피해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축사나 창고 주변을 서성이며 허탈한 속내를 내비쳤다. 고성군 용촌1리 주민 이헌실(63)씨는 애지중지 키우던 소 여섯 마리 가운데 두 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남은 소 마저도 몸 곳곳이 검게 그을리고 연기를 마셔 상태가 좋지 않다. 이씨는 “평생 이 곳에서만 살며 농사 때 쓰려고 조금씩 소를 키워왔는데 (소가 죽어서) 너무 슬프다”며 “그나마 사람이 안 다친 게 어딘가 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 이수숙(75)씨는 “이앙기 등 농기계를 보관하던 비닐하우스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홀랑 불에 타 버렸다”며 “앞으로 모도 심어야 하고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어야 하는데 농기계가 없으니 굶어야 하나 싶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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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던 주민이나 숙박업자들도 막막한 상황이 됐다. 해변에 위치해 관광객이 자주 찾던 한 카페도 잿더미로 변해 손님들이 줄줄이 발길을 돌리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번 화재로 건축자재 매장과 집을 잃은 유정순(63)씨는 “간밤에 갑자기 산에서 불씨가 날아와 집을 덮쳤고 5분 만에 불이 번져 몸만 챙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건축자재만 해도 30억원은 될 텐데 화재보험이 없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동해 망상해수욕장에서 민박촌을 운영하는 김모(60)씨는 갖고 있던 숙소 10여채 중 절반가량이 타 버렸다고 가슴을 쳤다. 김씨는 “간밤에 이불 한 장 못 챙기고 대피해 자세하게 살피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집뿐만 아니라 민박까지 대부분 날아갔다”며 “헐고 다시 지어야 하는데 그러면 적어도 수달 간은 운영하지 못할 것 아니냐”라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화재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도 있지만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주요 관광명소도 활기를 잃었다. 특히 봄철을 맞아 진행되는 벚꽃 축제는 이 지역의 성수기이기도 하지만 다소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실제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곳 중 하나인 속초중앙시장에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라면 줄이 길게 이어졌을 닭강정 점포에도 손님은 거의 없었다. 닭강정 점포 직원 이모씨는 “금요일에는 대기줄이 미어 터지고 오래 기다리지 않으면 닭강정을 사 가기 힘들다”며 “근데 오늘은 손님들이 줄 선 걸 본 적이 없다. 큰불 소식에 다들 겁을 먹고 안 나오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영동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자 정부는 고성·속초·동해·강릉·인제 등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수습에 나섰다. 우선 이재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이나 조립주택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기로 했고 영농철을 맞아 볍씨와 농기계, 비료 등에 대한 수요를 파악해 빠른 시일내 지원할 방침이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오전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이제는 피해지역 주민 지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현장 요구사항과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해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