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달러 위상…4~5년 내 중대한 문제 직면"

김상윤 기자I 2026.01.04 17:48:22

[2026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③
로고프 하버드래 교수의 경고
안보파워, 제도 신뢰, 연준 독립성
달러 지탱해온 세 축 동시에 흔들려

[필라델피아=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국제금융 분야의 권위자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경제가 정치 변화와 맞물린 구조적 전환점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최근 달러 약세를 둘러싼 논쟁이 단기 환율 변동에 쏠려 있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그보다 훨씬 깊다. 달러의 핵심은 가격이 아니라 지위, 즉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차지해온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지에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 분야의 권위자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3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고프 교수는 3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강연에서 “지금은 글로벌 경제와 정치가 함께 움직이는 전환 국면”이라며 “앞으로 국가 간 재정렬(realignment)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상당히 파괴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무엇이 다음에 올지는 알 수 없지만, 변화의 방향도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문제의식은 달러 패권을 지탱해온 기반이 서서히 약화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로고프 교수가 짚은 달러 패권의 토대는 세 가지였다. 안보를 중심으로 한 하드 파워, 제도와 법치에 대한 신뢰, 그리고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이다. 달러의 국제적 위상은 미국 경제 규모의 부산물이 아니라, 안보 우산과 제도적 신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린 결과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세 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로고프 교수는 관세 정책 확대와 정책 결정 과정의 혼선,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이 달러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앙은행 독립성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작동해 왔다”며 “이를 훼손해도 당장 문제가 터지지는 않겠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반드시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제도적 균열이 위기 국면에서 한꺼번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의 우려를 나타냈다. 로고프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 수요를 늘릴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오히려 탈세나 불법 금융의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이른바 지니어스(GENIUS) 법안과 같은 과도한 규제 완화는 “큰 실수”이며 “결국 나중에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 이후 한국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는 달러의 중장기 전망에 대해 더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했다. 로고프 교수는 “과거에는 달러가 5~10년 안에 중대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봤지만 지금은 4~5년 정도가 더 현실적인 시계”라고 말했다. 최근 나타난 달러 약세에 대해서는 관세 자체보다는 정책 불확실성과 신뢰 훼손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원화에 대해서는 구매력평가(PPP) 기준에서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환율의 단기 움직임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경험칙상 저평가분의 절반은 3년 내에 (시간을 두고) 해소할 수 있다”며 “앞으로 2~3년 내에 절상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울 것이다”고 말했다.

로고프 교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단기간에 모든 것을 뒤흔들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적돼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세계경제와 달러를 둘러싼 구조적 변화의 흐름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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