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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겸 박기주 기자] 지난 1일 서울시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펜스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불집회가 열리는 만큼 우려했던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데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조직위)와 보수성향 기독교단체 모두 `충돌은 안 된다`는 암묵적인 교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인천·대구 등에서 벌어진 충돌을 경험한 경찰의 선제적인 대응 또한 이번 집회의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퀴어축제·반대’ 시청광장에 모인 8만명, ‘충돌은 안된다’
이날 열린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퍼레이드에는 지난해보다 1만명 늘어난 7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이와 함께 도로 하나를 두고 열린 퀴어반대집회 러브플러스페스티벌에는 5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양측을 합쳐 약 10만명 넘게 시청광장 주변에 운집한 셈이지만 마지막 행사인 퀴어퍼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반대 측의 욕설을 막아달라는 몇몇 사고가 접수됐을 뿐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과거 서울을 비롯해 인천과 대구 등 주요 도시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 물리적 충돌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축제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고무적이다. 이처럼 큰일 없이 행사가 마무리될 수 있는 데에는 충돌은 하지 않겠다는 양측의 암묵적 합의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의 주요셉 자유인권실천국민행동 대표는 “퀴어퍼레이드를 절대 물리적으로 막지 않는다는 것이 단체의 입장”이라며 “동성애반대축제에 참여하는 시민과 기독교인들은 퀴어퍼레이드를 막는 데 동참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충돌에 대해 “퀴어축제에 대한 반대 의사는 표현할 수 있으나, 스크럼을 짜 (이들을 막게 되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물리적 충돌은 원치 않는다는 게 동성애반대축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퀴어축제 운영위에서도 참가자들을 향해 반대자들과 충돌하지 말 것을 거듭 당부했다. 오후 4시에 시작되는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전, 퀴어축제 관계자들은 수 차례 안내방송을 하며 “행진을 하다 보면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개별적으로 맞서 대응하거나 물리력을 쓰면 안 된다”고 알렸다. 퀴어축제 조직위는 또 “내년에는 펜스 없이도 축제를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1만명 동원, 만반의 준비한 경찰…인권위 권고 영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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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퀴어축제에는 경찰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경찰은 이날 총 120개 중대, 약 1만명의 경력을 동원했다. 경찰은 펜스를 통해 양측이 물리적으로 부딪히지 않도록 하는 한편 시청역 승강장 등에도 경비인력을 배치해 이동 과정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충돌에 대비했다.
특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퍼레이드에서 충돌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두 단체의 행진 경로와 시간을 조율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퀴어축제 조직위와 동성애 반대집회 측은 모두 광화문광장에서 행진하기를 원했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오는 2020년 1월 광화문광장은 재조성 공사에 들어가 사실상 광화문 일대에서 행진할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퍼레이드 과정에서 앞선 집회들 처럼 충돌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경찰의 사전 조율로 다행히 큰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또한 퀴어축제를 앞두고 있었던 국가인권위(인권위)의 권고도 경찰의 이 같은 대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는 지난달 27일 경찰청장에게 “사회적 약자나 소수집단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가 진행될 경우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