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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노벨문학상] "오스틴·카프카 뒤섞여"…가즈오 이시구로 수상의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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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7.10.05 23:21:40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올해 수상자로
인간·문명비판·인간성 상실·복원 녹여낸 작품세계
영미문학 대표작가…대영제국·프랑스문예훈장도
지난해 밥 딜런 논란 후 "전통으로 회귀"했단 평가

스웨덴 한림원은 5일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선정했다(사진=스웨덴 한림원).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반전은 없었다. 파격도 없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이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63)를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노벨문학상의 판도를 다시 본류로 되돌렸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시구로를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림원의 선택은 ‘파격’에서 ‘전통’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수상자로 선정한 미국의 대중음악가 밥 딜런(86)이 세계 모든 문학인과 음악인을 격분과 흥분으로 몰아넣었던 터. 올해의 노벨문학상 선정에 앞서 과연 한림원이 파격을 이어나갈지 아니면 전통으로 돌아설지 여부가 수상자 못지않은 관심을 끌어왔다.

△상복 많은 일본계 영국작가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이시구로는 1960년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영국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1978년 영국 켄터베리 켄트대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80년 이스트잉글리아대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기도 했고 사회복지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스물여덟 살인 1982년에 발표한 첫 번째 장편소설 ‘창백한 언덕풍경’(A Pale View of Hills)은 그를 촉망받는 작가의 반열에 덥석 올려놨다. 영국에 거주하는 일본 출신 중년여인 에츠코의 시선을 통해 2차대전 중 일본 나가사키의 피폭과 재건을 그린 작품은 당시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그려냈다. 그렇다고 전쟁이나 폭격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건 아니다. 그저 과거를 회상하고 싶지 않다며 딸에게 일본이름 붙이기를 반대했던 에츠코의 기억을 파고들 뿐이다. 이 단 한편의 작품으로 이시구로는 그간 숨겼던 문학적 재능을 온전히 드러내게 된다. 같은 해 그는 영국의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하면서 문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된다.

두 번째 장편인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An Artist of Floating World·1986) 역시 세계대전이 배경. 당시 선전예술을 통해 정치에 휘말리게 되는 마스지 오노라는 화가의 이야기다. 결혼을 앞두고 과거의 인물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전범이던 옛 행적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이 틈새서 이시구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의 인간 행동방식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이 작품으로 이시구로는 영국의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았으며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3년 뒤인 19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장편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s)을 통해 이시구로는 비로소 일본에 머물던 시선을 영국으로 옮겨온다. 1930년대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영국의 한 대저택 집사로 평생을 보낸 주인공 스티븐스가 주인의 호의로 6일간의 생애 첫 여행을 떠나면서 복원한 과거 이야기다. 스티븐스의 인생과 기억에도 두 차례 세계대전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1989년 부커상의 영광까지 안긴 이 작품은 이후 제임스 아이보리가 감독을 맡고 영국 유명배우 앤서니 홉킨스, 엠마 톰슨이 주연으로 나선 동명영화(1993)로도 제작돼 대중성까지 얻었다.

7년여 동안 발표한 3편의 장편소설로 이시구로는 동시대 영국 현대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배경과 인물이 서로 다른 세 작품을 두고 이시구로는 “같은 책을 세 번 썼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관되게 관통한 주제 ‘인간성 상실·복원’

1995년에 발표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서 이시구로는 새로운 실험에 나선다. 과거와 현재·미래가 없는 초현실적 가상도시가 배경. 유명 피아니스트가 성공을 위해 버려야 했던 가치를 되살리려 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이기도 한 이 소설은 ‘카프카적’이란 평가와 함께 첼튼햄상을 그에게 안겼다.

이후 연달아 발표한 장편 ‘우리가 고아였을 때’(2000), ‘나를 보내지 마’(2005)에 이어 최근의 ‘파묻힌 거인’(2005)까지 이시구로의 소설 7편이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성 상실과 복원의 문제다. 특히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인간의 슬픈 운명과 사랑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던진 이시구로의 대표작. 이 작품은 그해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 ‘2005년 최고의 소설’로까지 뽑히기도 했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사진=민음사).


7편의 장편소설을 통해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내며 현대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반열에 오르게 된다. 상복도 많은 작가다. 여러 문학상을 두루 섭렵한 것도 모자라 1995년엔 대영제국훈장을, 1998년엔 프랑스문예훈장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까지 거머쥐게 됐다.

△파격서 전통으로…‘노벨문학상’ 다시 본류로

잊히고 왜곡된 기억을 복원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 이시구로를 향한 총평이 그렇다. 실제 벌어진 사건을 들이대지만 그에게 역사는 어디까지는 그저 장면일 뿐이다. 그의 작품은 역사의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한, 철저히 인간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이시구로의 작품에서 배경과 사건은 사실상 본질이 아니다. 차라리 왜곡될 수 있고 망각할 수 있고 침묵할 수도 있는 인간기억의 여러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 맞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회상을 통하여 과거를 이해하며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 전쟁으로 인한 상실감 등을 극복하려 한다. 이시구로는 이런 작업에 대해 “직업적인 면에서 소모적인 삶을 사는 인간을 통해 한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어떻게 타협하는지를 그리려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시구로의 작품세계를 두고는 제인 오스틴, 프란츠 카프카, 마르셀 프루스트가 동시에 언급되기도 한다. 영국적 환경을 배경 삼아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잡아낸다는 점에서는 오스틴을, 인간의 소외·고독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다는 점에선 카프카, 1인칭 화자를 통해 내면의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프루스트가 뒤섞여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과 외모 탓에 일본작가로 종종 오해받은 때문인지 이시구로는 “민족과 언어를 넘어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작가이고 싶다”고 자주 말하기도 했다. “때때로 인간은 틀릴 수도 있는 신념을 전력으로 붙잡고 자기 삶의 근거로 삼는다. 내 초기 작품들은 이런 인물들을 다룬다. 그 신념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환멸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건 그저 그 탐색이 어렵다는 걸 발견한 것뿐이고 탐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확보한 이시구로가 올해 노벨문학상으로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한림원의 선택을 두고 벌이던 논쟁도 일단은 수그러들게 됐다. 지난해 밥 딜런이란 파격을 넘어 순수문학의 명망 있는 작가에게 수여하던 노벨문학상의 전통으로 돌아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편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가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시구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은 내가 앞서 살았던 대단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대단한 영광이자 훌륭한 표창”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매우 불확실한 순간에 있는 우리 세계에 노벨상이 긍정적인 어떤 힘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내가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매우 감동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상 시상식은 매년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노벨상 각 부문에 수여하는 상금은 900만크로나(약 12억 7000만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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