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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수요예측, 10억원 단위 선착순 모집"…수상한 채권영업

안혜신 기자I 2024.06.23 19:31:58

[채권시장 불법 영업관행]①
개인투자자에 공시 전 수요예측 정보 사전 공유
고금리 노리는 개인 투자자 입맛 맞춰 등급 낮은 채권 투자
금융 당국 실체 파악 못해…"제도 마련 필요"

[이데일리 마켓in 안혜신 박미경 기자] 채권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영업이 늘고 있다. 미공개 정보 사전공유는 물론이고 위험성이 높은 채권도 금리를 내세워 판매하면서 인터넷 카페 쪽지를 통해 영업하는 등 관리 사각지대에서 알음알음 활동 범위를 키우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규제할 제도 자체가 미비한 것은 물론, 금융 당국이 제대로 된 실태 파악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채권투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규제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 당국이 채권 개인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불법 영업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에서 채권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카페 쪽지 혹은 카카오톡 등을 통해 회사채 수요예측 관련 정보를 공시 전 공유하는 등 법의 테두리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영업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수수료를 받고 수요예측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서 마치 개인이 직접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것처럼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한다. 현행법상 회사채 수요예측은 기관만 참여할 수 있으며, 별다른 투자 일임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개인은 참여가 불가능하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는 아직 증권신고서가 올라오지 않은 기업의 회사채 수요예측 일정과 발행일 등이 공유된다. 수요예측 당일에는 다른 기관의 주문 상황, 발행 예상 금리 등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공시 전인 미공개 정보를 사전에 공유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들이 주로 금리가 높은 고위험 회사채에 투자한다는 점은 가장 큰 우려 요인이다. 금리에 민감한 개인 투자자들을 노린만큼 이들이 수요예측에 들어가는 종목은 푸본현대생명, HL D&I, 삼척블루파워 등 주로 A급 이하의 신용 위험도가 높은 종목들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발행 금리가 높은 기업은 신용 위험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말”이라면서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채권에 대해서 발행 금리가 확정되기 전에 먼저 수요를 받아놓고 판매한다는 것은 사전 판매 행위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순매수 20조원을 훌쩍 넘어선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사랑이 이러한 영업 행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은 고금리 상품을 좇는 경항이 강하다. 채권과 관련된 정보가 주식과 달리 제한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점도 이러한 영업이 활개칠 수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채권은 최소 거래 단위가 크고, 수요예측에 개인이 참여할 수 없는 등의 특성으로 인해 유동성이 적은 편이고 이에 따라 관련 정보도 기관끼리만 공유된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변칙적인 영업행위는 맞지만 투자자를 직접적으로 속이는 행위는 아니다 보니 강력한 규제가 없는 것 같다”면서 “채권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라도 관련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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