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 서거 25주기] ②
“이봐, 해봤어?” 도전으로 보여준 기업가 정신
자동차부터 조선까지…한국 경제를 바꾼 선택들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의 도전정신과 뚝심은 한국 산업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 |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 (사진=현대차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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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사꾼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가출을 시도했고, 19세가 되던 해 4번째 가출 끝에 서울에 정착했다.
 | | 청년 시절의 정주영 회장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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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막노동과 점원 등 여러 일을 전전하던 그는 1938년 신당동에 자신의 쌀가게 ‘경일상회’를 열며 사업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동차 수리 공장 ‘아도 서비스’를 인수하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수한 지 불과 20일 만에 공장에 화재가 나는 시련을 겪었지만 평소 쌓아온 신용을 바탕으로 다시 빚을 얻어 공장을 재건했고 사업은 빠르게 번창했다.
 | | 1948년, 현대자동차공업사 창업 1주년 기념촬영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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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년 뒤인 1946년 아도 서비스는 ‘현대자동차공업사’로 이름을 바꾸며 사명에 처음으로 ‘현대’가 등장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었다.
 | | 1950년대 말, 정 회장이 미군과 건설 공사를 계약하고 있다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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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며 건설업에 진출했다. 이는 훗날 현대건설로 이어지며 현대그룹의 모태가 됐다. 처음에는 미군 부대의 화장실 수리나 보수 공사 같은 작은 일부터 시작했지만 미군들 사이에서 “현대는 확실하다”는 평가를 얻으며 점차 대형 공사를 수주하기 시작했다.
 | | 1970년 경부고속도로 현장을 시찰하는 정 회장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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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정 회장은 특유의 신용과 실행력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고령교 공사의 난관을 집념으로 극복한 뒤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등 국가 기간시설 건설을 진두지휘하며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 1973년 현대울산조선소 시업식에서 연설하는 정 회장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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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는 조선 사업에 도전했다. 당시 정부는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하고 있었고 정 회장은 삼면이 바다인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양 강국이 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회사 내부는 물론 고위 경제관료들까지도 “무모한 도전”이라며 반대하거나 비웃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봐, 해봤어?”라는 한마디와 함께 과감히 실행에 나섰고 이는 단일 기업 최초 5000척 인도라는 거대한 성과로 이어졌다.
 | | 1971년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 도입 서명을 마친 정 회장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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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당시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과 4300만 달러(약 643억원) 규모의 차관 도입을 협의했다. “기술력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보이는 관계자에게 거북선 그림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다”며 설득시킨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현대중공업 신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회자된다.
 | | 1975년 국산차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 생산 기념식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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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했다. 이후 포니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산품으로 자리 잡았고 1986년 미국 시장에 처음 수출됐다. 이듬해에는 미국 수입 소형차 판매 1위를 기록하며 한국을 명실상부한 자동차 산업·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올렸다.
 | | 1976년 나와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주베일 산업항 공사 계약 체결 후 (사진=아산정주영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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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해외 사회간접자본 건설에도 과감히 도전하며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렸다. 그 시작은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유전지대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였다. 당시 현대건설이 수주한 주베일 항만 공사의 계약금액은 9억 3114만 달러(약 1조 3900억원)로 당시 한국 국가 예산의 약 25%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 |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건설 현장을 시찰하는 정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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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많은 참모들은 “낮 기온이 50도에 육박해 작업이 불가능하고 물도 부족해 공사가 어렵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낮에 더우면 자고 밤에 시원할 때 일하면 되지 않나. 모래와 자갈이 지천이니 재료 걱정도 없다”며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 | 울산 조선소를 살펴보는 정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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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 보이던 일 앞에서도 먼저 시도하고 길을 만들어냈던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오늘날 한국 산업 발전의 굳건한 토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