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어떻게 믿나" 부모보다 가난한 젠지들…왜 불행하냐고?

정윤지 기자I 2025.09.03 06:00:00

■특별기획 ‘글로벌 젠지(GenZ) 리포트’ ⑦그리스
‘국가부도’ 그리스, 8년 만에 구제금융 졸업
경제지표 우상향에도…Z세대 “정부 신뢰 안 해”
성장 과정서 참사·보조금 횡령 등 ‘정치 실패’ 지적도
기성세대에 신뢰 잃은 Z세대, 정치에도 無관심
청년 실업률 25%대…행복 지수, OECD 바닥 수준

[편집자 주] 이데일리는 대한민국 2000년생 청년들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한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2000년생들이 직면한 문제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 세계적 문제임을 공론화하고 미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독일, 리투아니아, 그리스 청년들의 사례를 통해 공존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이 2000년생 청년들의 진정한 행복 찾기에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테네·포르토 라프티(그리스)=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대학이나 일자리 같은 삶과 연관된 정책에 불만이 많아요.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만 내고 정작 우리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습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2000년생 직장인 바실리키발사모(24)씨는 그리스 Z세대 대부분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뒤 현지 호텔에서 일하는 그리스 Z세대다. 바실리키발사모씨는 “그리스 정부는 정책을 내놓으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많다”며 “젊은이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야 하는데 보여주기식이 많아 정부를 믿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바실리키발사모(24)씨. (사진=정윤지 기자)
뼈를 깎는 긴축 끝에 지난 2018년 구제금융을 졸업한 그리스가 경제공황의 그림자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다. 경제 성장률 등 각종 경제 지표는 우상향하고 있지만 경제 위기가 정치에도 위기를 가져오면서다. 시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못했고 젊은 층은 정치 참여에조차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리스를 이끌어 갈 Z세대들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IMF가 남긴 그림자…정부 신뢰도는 ‘낙제점’

지난달 그리스 곳곳에서 만난 Z세대와 전문가들은 “시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들이 부모 세대보다 더 나쁜 조건에서 살아가는 ‘끊임없는 위기의 세대’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2000년생 직장인 아티나 니콜로글루(25)씨 역시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실리키발사모씨와 마찬가지로 관광학을 전공한 뒤 현지 여행사에서 일하는 그는 “정책 주제는 우리 세대를 얘기하지만 정작 정부는 우리와 대화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그리스 정부에 대한 저신뢰는 각종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공기관 신뢰도를 분석한 결과, ‘높음’ 혹은 ‘적당히 높음’을 선택한 그리스 국민은 32%로 OECD 평균인 39.3%, 한국 37.1%보다 낮았다. 18~29세에서는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스 Z세대들은 공통적으로 국가 부도위기 후 침체된 경제상황이 낮은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앞서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 가입 후 호황을 누리다 동시에 지출도 늘며 국가 부채가 빠르게 증가했다. 세계 경제가 휘청이자 그리스 경제의 기둥이 된 해운·관광산업은 물론 각종 투자 시장 거품이 한 번에 빠졌고 2015년 정부는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당시 그리스는 재정적자가 국내 총생산(GDP) 대비 15.4%에 달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구제금융 졸업 후 7년이 지난 2025년 현재 그리스 GDP는 성장했지만 실제 생활 수준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Z세대와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바실리키발사모씨는 “경제적으로는 많이 낙후돼 있고 혜택을 받지 못해 불편한 게 더 많다”고 했다.

경제 회복 과정에서 정치가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표적 사례가 2023년 2월 57명의 사망자를 낸 템피 열차사고다. 여객 열차와 화물열차가 정면 충돌하며 발생한 이 사고는 연휴를 즐기고 돌아오던 20대 학생들이 대부분 피해를 입었고 노후 철도 시스템이 원인으로 꼽히며 전국적 시위로 이어졌다. 바실리키발사모씨는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큰 실망감을 느꼈다”며 “유가족은 위로의 한 마디가 필요한 건데 그건 제쳐놓고 남의 탓만 하는 걸 보고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여기에 부패한 지도부도 저신뢰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지난 6월 그리스 정부는 몇몇 지도부의 EU보조금 부정수령 문제로 3억 9200만 유로(한화 약 5800억)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그리스 아테네 조그라푸에 위치한 아테네대학교 철학대학 건물 곳곳에 학생들이 각종 시위 문구를 적어놨다. (사진=정윤지 기자)
‘50%대 투표율’ 정치 참여까지 외면케 한 ‘저신뢰’…행복지수 ↓

문제는 정치 참여율도 낮다는 점이다. 총리가 실질적 지도자인 그리스에서 최근 5년간 치러진 3번의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57.91%(2019년), 61.76%(2023년 1차), 53.74%(2023년 2차)에 그쳤다. 바실리키발사모씨는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한 번도 투표해본 적이 없는데 정치인을 뽑아봤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서 다들 별로 투표권에 관심 없다”고 말했다. 아티카씨도 “여러 번 선거에서 같은 사람이 나오는 걸 보고 그 뒤로는 관심 없어졌다”고 했다.

스타브로스 마브루데아스 판테이온대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저조한 투표율에 관해 “기차 사건 이후 그리스에서 시위가 아주 많아서 모든 게 마비될 정도였다”면서도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없었던 일처럼 만들었고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마브루데아스 교수는 청년 세대에서 이러한 무관심이 두드러진다고도 했다. 그는 “대학에 오는 학생들도 정치와 정부에 관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IMF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하는데 관심도가 떨어지다 보니 발전이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그리스 Z세대들은 삶을 꾸려나갈 근간이 될 일자리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직면해 있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최근 3년간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10.13%를 기록했지만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24.74%(한국 5.9%)에 달했다. 경제활동 참가를 위한 교육이나 취업준비, 훈련을 받지 않는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비율 역시 지난해 10.4%로 집계됐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그리스 아테네 경제산업연구소(IOBE) 본사에서 만난 니코스 베타스 경제산업연구소장. (사진=정윤지 기자)
정치의 실패와 성장하지 못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그리스 Z세대의 행복 지수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웰빙연구센터가 작성한 ‘2024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30세 이하 연령에서 그리스는 한국(52위)에 이어 53위를 기록했다. 이는 OECD 38개국 중 하위 7번째다. 니코스 베타스 그리스 경제산업연구소(IOBE) 소장은 “확실한 것은 기성세대에 비해 실업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버는 수입이 매우 적어 전반적으로 가난한 상태다. 미래를 볼 수 없어서 커다란 꿈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통역 도움=강경애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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