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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신년르포]폭설 1주일 후 쓰레기장 된 뉴욕

피용익 기자I 2011.01.05 11:10:00

지자체 재정난에 제설 지연..쓰레기도 못치워
교통비 오르고 시민혜택 줄어..뉴요커들 분노

[뉴욕=이데일리 피용익 특파원] 맨해튼 어퍼웨스트에 거주하는 대학생 신디 루 씨(23)는 지난달 30일 지하철 정액권을 구입하려다 분통을 터뜨렸다. 한 달 89달러였던 무제한 정액권 요금이 104달러로 무려 16.9%나 올랐기 때문이다. 요금 인상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지만 루 씨가 화난 이유는 다름아닌 시기 때문이다.

그는 "폭설 때문에 지난 며칠 동안 지하철이 정상 운행되지 않았는데도 요금 인상 시기를 미루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발이 다 젖어가며 눈길을 헤치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루 씨의 황색 어그 부츠는 눈에 젖어 갈색이 돼 있었다. 그는 뉴욕시가 폭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잔뜩 불만을 털어놨다. 뉴욕에 이사 온 지난 4년 동안 이런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펜스테이션에서 그를 만난 후 나흘이 지나도록 맨해튼 시내의 눈은 완전히 제설되지 않았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골목에는 눈 때문에 쓰레기 수거 차량이 진입하지 못해 곳곳이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퀸즈에서 맨해튼으로 통근하는 변호사 제이 밴(35) 씨는 "요즘 같아서는 뉴요커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 어렵다"며 폭설 한 번에 마비된 시 행정을 비난했다.
 
▲ 맨해튼 31번가의 한 주상복합건물 앞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다. 제설 작업이 지연돼 몇일째 쓰레기 수거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면서 뉴욕 시내 곳곳이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연말연시 뉴요커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은 뉴욕주와 뉴욕시, 그리고 이 지역 공기업들의 재정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뉴욕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50개주의 총 부채는 연기금 적자를 포함해 약 1조50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재정난으로 인해 최대 100개 도시가 파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들의 부채가 급증한 것은 경기후퇴로 인해 세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대출을 받아 야기됐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 부채 감축 노력에 시민들만 고통
▲ 폭설이 내린 다음날 한산한 브로드웨이 거리. 미국은 눈이 오는대로 쓸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지만, 이번 폭설에는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자체의 부채 문제는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유로존 이후 재정위기는 미국 주정부와 지방정부에 닥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지자체들은 미국 경제의 암적인 존재로 떠오른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뒤늦게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오히려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교통비가 오르고 각종 행정 서비스가 줄어들면서 시민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뉴욕시의 재정적자는 오는 2012년 6월까지 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모든 시 기관들에서 해고를 단행하고, 야간에 20개 소방서의 문을 닫고, 도서관, 문화센터 등 각종 시민 혜택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또 최근 폭설에 대한 뉴욕시의 대응이 예년과 달리 미흡했던 것은 예산이 삭감된 환경미화원들이 제설 작업을 고의로 지연시켰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시 지하철을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는 막대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폭설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요금 인상을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허드슨강 건너 뉴저지주에서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된 지 2~3년이 지난 기프트카드와 여행자수표를 몰수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방법원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 법안의 효력을 중지시켰지만, 뉴저지주는 105억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부 캘리포니아주는 사실상 파산에 이른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여름 공무원 강제 무급휴가를 실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결국 260억달러가 넘는 적자를 남기고 퇴장했다.

◇ 계속되는 악순환 해법은 어디에

▲ 맨해튼 6번 애비뉴 눈더미 속에 경찰차가 주차돼 있다. 폭설이 내린지 1주일이 지나도록 제설은 완전히 되지 않았다.
미국 지자체들의 재정위기는 공무원의 대량 해고와 연금 삭감, 일반 시민들의 복지혜택 축소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미국 경제 회복세에 가장 중요한 고용과 소비에 타격을 주게 돼 악순환을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가장 큰 문제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연방 정부의 재정적자가 1조달러가 넘는 상황에서 주정부와 지방정부를 지원할 여력은 크지 않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주정부 재정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명료하게 경고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너무 많은 돈을 썼습니다. 우리는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썼지요. 우리는 미친듯이 돈을 빌렸습니다. …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덩이에서 기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려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내린 폭설은 뉴욕시의 미흡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연일 이어진 따뜻한 날씨로 인해 대부분 녹았다. 그러나 폭설 후 1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맨해튼의 뒷골목에는 쌓여 있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은 언제든 빙판길로 변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경기부양책에 따른 경제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 그리고 이로 인한 더 큰 위험의 가능성은 맨해튼 뒷골목에 쌓여있는 눈과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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