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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 전 부행장 등 국민은행 임직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채용비리는 2015년 상반기 공채에서부터 시작됐다. 경영지원그룹 부행장인 이모씨, HR본부장 김모씨, 인력지원부장 권모씨는 신입행원 채용에서 채용팀장 오모씨에게 전형별 합격자 결정시 심사위원 평가 순서에 구애받지 말고 필요한 경우 합격자를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조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청탁지원자들에 대한 조정이었다. 권씨는 오씨에게 10여명의 청탁지원자 명단을 전달하며 “합격 여부를 사전에 따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또 “남성 신입행원을 더 많이 선발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여성 지원자가 더 많은 상황에서 최종 합격자 남녀 비율을 6대4나 7대3으로 하라는 요구였다.
◇서류전형 점수 조작해 여성 지원자 112명 탈락
오씨는 이 같은 지시를 토대로 서류전형, 면접 등 각 전형 단계에서 실제 점수를 조작했다. 총 840명의 서류전형 합격권 지원자 중 여성이 더 많다는 것을 미리 알고 남성 113명의 점수는 높여 합격시키고 여성 112명의 점수는 낮춰 탈락시켰다. 특별한 기준도 없었고 여기엔 서류전형 탈락권에 있던 청탁지원자들의 구제 목적도 있었다.
면접 전형을 앞두고 이씨, 권씨 등은 추가로 청탁지원자 명단을 오씨에게 건넸다. 명단 중 한 명의 경우 ‘회장님 각별히 신경’이라는 A씨 메모도 기재돼 있었다. 오씨는 서류전형 탈락권에 있는 청탁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권씨 승인을 받아 합격인원을 30명 늘렸다.
면접 평가 결과 A씨가 불합격권 놓이자 오씨는 A씨를 포함해 28명에 대한 면접 평가 점수를 임의로 높였다. 청탁지원자인 A씨를 제외한 나머지 27명에 대해선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청탁지원자의 합격 여부는 상부에 보고됐다.
검찰 수사 결과 국민은행의 이 같은 채용비리는 이후에도 △2015년 하계 인턴 채용 △2015년 하반기 신입행원 채용 △2016년 하계 인턴 채용 △2016년 하반기 신입행원 채용 △2017년 동계 인턴 채용에서도 이뤄졌다.
◇임직원들 “합격자 조정, 정당한 인사 재량권” 주장
이들은 법정에서 “사기업인 국민은행은 채용에서 폭넓은 재량권을 갖고 있고, 그 같은 인사 재량은 부행장인 이씨에게 전결 위임돼 있다”며 “합격자 조정은 정당한 재량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국민은행이 사기업이기는 하나 다른 사기업과 달리 은행업에 의해 금융감독원 감독을 받고 은행이 부실화될 경우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각종 보호를 받기도 한다”며 “그에 맞는 사회적 책무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불법적 점수 조작으로 당락이 변경된 지원자 규모가 상당하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했던 지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 이들이 받은 허탈감과 배신감을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질타했다.
1심은 이 전 부행장, 권 전 부장, 오 전 팀장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김 전 본부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양벌규정에 따라 국민은행 법인에 대해서도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에선 실제 점수 조작을 실행한 오씨에 대해 “지원자들의 인적 정보를 파악한 상태에서 특정 지원자 점수를 올리는 등 채용에 영향을 미치고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다른 피고인들의 형량은 1심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