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 1976년 뉴욕…“무너지는 동안 놀라운 일 시작” 싼 월세·젊은 예술가 밀집…바워리 작은 클럽서 펑크 성장 흑인·라틴계 디스코…쇠락한 브롱크스에선 힙합 분출 펑크·디스코·힙합 교류하며 세계 대중문화로 확산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2026년에는 미국 전체가 1776년(미국 독립선언의 해)에 집중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1976년에 주목하면 어떨까요?”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를 기획한 역사학자 테드 위드머 뉴욕시립대(CUNY) 맥컬리 아너스 칼리지 석좌강사가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히스토리컬(뉴욕역사박물관)에서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히스토리컬(뉴욕역사박물관).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You Should Be Dancing: New York, 1976 and Beyond)’ 개막을 하루 앞두고 기자들을 맞은 역사학자 테드 위드머는 4~5년 전 박물관장에게 보냈던 이메일 한 통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그가 다시 조명하고 싶었던 것은 정확히 반세기 전 뉴욕이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통령 특별보좌관과 연설문 작성자로 일했던 위드머는 현재 뉴욕시립대(CUNY) 맥컬리 아너스 칼리지 석좌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을 기획한 객원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위드머 교수는 “1976년은 뉴욕 역사에서 결정적인 해였다. 한마디로 힘든 시기였다”며 “많은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뉴욕은 파산 직전이었다. 1975년 10월 뉴욕 데일리뉴스의 1면에는 ‘포드 대통령, 뉴욕시에 “죽어라”(FORD TO CITY: DROP DEAD)’라는 제목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당시 뉴욕시는 파산 선언문까지 작성했다. 시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경찰과 소방관, 교사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이 문서는 법원에 제출되지 않았다.
1975년 10월 30일 미국 뉴욕 데일리뉴스 1면에 ‘FORD TO CITY: DROP DEAD(포드, 뉴욕시에 “죽어라”)’라는 제목이 실려 있다. 당시 재정위기에 빠진 뉴욕시에 대한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에 부정적이었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입장을 압축한 제목이다. 1일(현지시간) 뉴욕히스토리컬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에 전시된 모습. (사진=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도시가 무너져 내리는 동안 뉴욕의 거리와 클럽에서는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꿀 세 가지 움직임이 성장하고 있었다. 펑크와 디스코, 힙합이었다.
전시장에는 당시 맨해튼 바워리의 전설적인 음악 클럽 CBGB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차양이 전시돼 있었다. 바워리는 허름한 숙박시설과 술집이 모인 거친 동네였지만, 이곳의 작은 무대에는 라몬스와 패티 스미스, 블론디, 토킹 헤즈 등 젊은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CBGB를 즐겨 찾던 존 홈스트롬은 직접 잡지를 만들어 1976년 1월 ‘펑크(Punk)’ 창간호를 발행했다. 같은 달 라몬스는 첫 음반 녹음에 들어갔다. 작은 공연장과 독립 잡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왜 하필 경제적으로 무너져 가던 뉴욕이었을까. 위드머 교수는 저렴한 주거비를 한 가지 배경으로 꼽았다. 당시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월세는 수백 달러 수준이었다. 음악가와 미술가, 만화가들이 CBGB 인근에 모여 살며 서로의 작업을 접할 수 있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히스토리컬에서 열린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에 맨해튼 바워리의 전설적인 음악 클럽 CBGB에서 실제 사용했던 차양이 전시돼 있다. CBGB는 1970년대 라몬스와 패티 스미스, 블론디, 토킹 헤즈 등이 활동하며 뉴욕 펑크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그는 “재정위기가 젊은이들에게 뉴욕을 감당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위기가 음악 혁명을 직접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쇠퇴한 도심의 저렴한 공간이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을 가능하게 한 조건 중 하나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뉴욕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바워리에서 펑크가 성장하는 동안 뉴욕의 다른 지역에서는 디스코가 급성장하고 있었다. 위드머 교수는 디스코의 뿌리가 흑인과 라틴계 공동체의 음악에 있다고 강조했다. 초기 디스코 클럽은 성소수자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공간이기도 했다. 입장료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클럽도 있었다.
위드머 교수는 “아무리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도시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할 수 있다면 춤을 추라는 것”이라고 당시 디스코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는 비지스의 1976년 히트곡 ‘유 슈드 비 댄싱’이 이번 전시 제목으로 선택된 이유이기도 하다. 디스코는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를 계기로 세계적인 대중문화로 확산했다. 그러나 위드머 교수는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던 맨해튼의 전설적인 디스코 클럽 ‘스튜디오54’보다 다양한 공동체가 어울렸던 초기 디스코의 개방성을 높이 평가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히스토리컬에서 열린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에서 1970년대 뉴욕의 디스코 문화를 보여주는 의상들이 전시돼 있다. 당시 뉴욕의 디스코는 흑인과 라틴계 음악을 뿌리로 다양한 공동체의 클럽 문화를 통해 성장했다. (사진=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같은 시기 뉴욕 브롱크스 지역은 높은 실업률과 빈번한 방화, 도시 서비스의 쇠퇴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큰돈이나 전문적인 음악 교육 없이도 청년들은 이미 존재하는 음반과 턴테이블, 스피커를 새로운 ‘악기’로 바꿨다. 쿨 허크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아프리카 밤바타 등 초기 힙합의 선구자들은 공원과 동네 파티에서 저마다 새로운 DJ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래피티 역시 청년들의 표현 수단이었다. 위드머 교수는 당시 그래피티가 도시 쇠퇴의 상징으로 비판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존재와 희망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피티의 의미를 “나는 여기 있다. 나도 중요하다”라고 풀이했다.
서로 다른 공동체에서 성장한 펑크·디스코·힙합은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교류했다. 펑크 밴드 블론디는 1979년 디스코의 영향을 받은 ‘하트 오브 글래스’로 성공했고, 1981년에는 랩을 접목한 ‘랩처’를 발표했다. 1979년 슈거힐 갱의 ‘래퍼스 딜라이트’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힙합은 방송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히스토리컬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에 초기 힙합 공연장과 파티 장소를 표시한 브롱크스·어퍼맨해튼 지도와 당시 공연 전단들이 전시돼 있다. 1970년대 브롱크스에서는 공원과 동네 파티 등을 무대로 새로운 DJ 문화가 성장하며 힙합이 형성됐다. (사진=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위드머 교수는 정치권이나 금융계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던 젊은 음악가들이 뉴욕의 문화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창의성에는 장벽이 없다. 돈이 거의 없고 미술학교에서 교육받지 않은 젊은이들도 나가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며 가장 불리한 환경에 놓인 지역과 사람들에게서도 놀라운 창작물이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히스토리컬은 이 같은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를 내년 4월 4일까지 연다. 패티 스미스의 셔츠와 자필 가사, CBGB의 차양,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턴테이블 등 당시의 음악 혁명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된다.
루이스 미러 뉴욕히스토리컬 최고경영자(CEO)는 “1970년대 뉴욕은 경제 상황이 악화하는 동시에 창의성이 치솟았던 모순의 시대였다”며 “펑크와 디스코, 힙합을 통해 촉발된 문화혁명은 미국을 영원히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히스토리컬에서 특별전 ‘유 슈드 비 댄싱: 뉴욕, 1976년 그리고 그 이후’의 언론 사전공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파산 위기에 놓였던 1970년대 뉴욕에서 성장한 펑크·디스코·힙합과 당시 도시문화를 조명한다. (사진=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