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이어준 1000마리 종이학[이희용의 세계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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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12.08 07:05:27

조선 고아 수천 명 돌본 일본인 윤학자 씨의 삶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음악극 '공생, 원'으로 탄생
국경 뛰어넘은 사랑·헌신, 한일 '진정한 공생' 본보기로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 문예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수용 감독은 1995년 한일 국교 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해 한일 합작 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완성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현해탄을 건너온 다우치 지즈코(田內千鶴子·한국명 윤학자) 씨가 목포 ‘거지 대장’ 윤치호 공생원 원장과 결혼해 수천 명의 고아를 길러낸 사연을 담았다.

‘공생,원’ 출연진(사진=국립극장)
맏아들 윤기 씨가 쓴 자서전 ‘어머니는 바보야’가 원작으로, 한국과 일본의 배우 길용우와 이시다 에리가 주인공 부부 역을 맡았다. 대사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7대 3 비율로 등장하며 출연진과 제작진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 수입이 막혀 있을 때여서 일본에서는 여러 도시에서 개봉돼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반면 한국에서는 상영하지 못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따라 제1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가 이뤄진 뒤에야 선보일 수 있었다.

윤학자 씨는 공생원에서 윤 원장을 돕다가 사랑에 빠졌다. 1938년 결혼하며 남편 성을 따르고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꿨다. 남편은 해방 후 친일파로 몰리고 6·25 와중에 반동분자와 부역자로 지목돼 연거푸 죽을 고비에 놓였으나 그때마다 공생원 원생과 목포 시민의 변호 덕에 살아남았다.

1951년 남편이 행방불명된 뒤 윤 씨는 손수 리어카를 끌고 혼수로 가져온 오르간 등을 팔아가며 헌신적으로 고아들을 돌봤다. 친자식 4남매도 똑같이 먹이고 입혀 원망을 들을 정도였다. 1968년 10월 31일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최초로 목포 시민장이 치러질 때는 3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몰렸다.

영화 속에서 윤 씨가 마지막 남긴 말은 일본식 매실장아찌 우메보시를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NHK TV로 이 장면을 보고 감동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유언을 들어주고자 자신의 고향 군마현의 매화나무 20그루를 2000년 3월 공생원에 기증했다. 윤 씨의 손자 윤록 공생원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꼭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는데 한 달 뒤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공생원 원생들은 그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1000마리의 종이학을 접어 보냈다. 공교롭게도 총리 부인의 이름도 윤학자 씨의 일본명과 같은 지즈코(千鶴子)로 1000마리 학을 뜻했다. 지즈코 부인은 남편이 눈 뜨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종이학을 병실 링거 거치대에 걸어뒀다.

그러나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5월 14일 눈을 감았다. 종이학도 관에 함께 담겼다. 8년 뒤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공생원을 찾았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윤 씨 묘비 옆에서 잘 자라고 있는 매화나무도 확인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국경을 초월한 윤학자 씨의 모성애를 음악극으로 꾸민 ‘공생,원’이 오는 11~1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윤 씨가 겪었던 차별과 수난의 순간과 이를 사랑과 자비로 극복하는 과정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극본과 연출은 정준과 김달중, 작곡과 음악은 황경은과 김길려가 각각 맡았다. 젊은 날과 중년의 윤 씨 역에는 송상은과 박미용이 캐스팅됐다. 임진웅은 내레이터인 공생원생 범치로 등장한다.

‘공생,원’은 무장애 공연으로 진행한다. 배역별 전담 수어 통역사 6명을 배정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생생히 전달하고 국립극장 최초로 스마트 안경을 도입해 무대 위 상황과 대사를 실시간 자막으로 띄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폐쇄형 음성 해설도 제공한다.

올해 들어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다채롭게 열렸다. 지난 60년간 두 나라가 손잡고 이뤄낸 성취는 눈부셨고 앞으로의 우호와 협력을 다짐하는 구호도 풍성했다. 그러나 오부치처럼 “통절한 반성과 사과”의 뜻을 밝힌 일본 정치인은 없어 그 다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윤학자는 굶주린 아이들과 함께 살며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을 실천했다. 한일 두 나라가 진정한 공생의 길로 나아가려면 윤학자 닮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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