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mp 2020)현대차③`30년 쇳물의 꿈` 현실이 되다

정재웅 기자I 2010.03.30 10:57:19

78년부터 일관제철소 추진..3전4기 끝에 성공
정몽구 회장의 '품질 DNA' 그대로..최고 품질 쇳물 만든다
쇳물서 車까지 '수직 계열화' 완성..시너지 극대화

[이데일리 정재웅 기자]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건지···"

때아닌 폭설로 쌀쌀해진 날씨 때문이었을까. 하늘을 바라보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날씨를 탓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최근 있었던 현대제철 고로 화입식이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의 얼굴은 더욱 환해졌다. "다행이죠. 고로사업 앞으로 잘 될겁니다". 그의 얼굴은 '고로'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더욱 환해졌다.

정 회장의 표정에는 지난 30여 년간 간직해왔던 선친의 꿈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묻어나 있었다. 지난 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신년인사회에서 정 회장의 모습이었다.
 
정 회장에게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사업은 반드시 이뤄내야할 숙제였다.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을 육성해낸 그에게 최고 품질의 자동차 강판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제철사업이 필요했고 마침내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그의 미소는 그런 의미였다.

◇'3전 4기'로 이룬 일관제철소의 꿈

현대차그룹의 제철사업에 대한 꿈은 지난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그룹은 자동차, 조선 등 철강 수요가 많은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물량 확보와 원하는 품질 확보, 납기 문제 등의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차라리 우리가 좋은 철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일관제철사업을 추진하게된다.

하지만 일관제철소 사업 추진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1978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제2제철소, 즉 현재의 광양제철소 사업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현대그룹은 그동안 뜻을 품었던 일관제철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손을 들어줬다. 제철사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포항제철이 처음 시작하는 현대그룹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대그룹은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제1고로의 모습.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회는 16년 뒤인 1994년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정주영 회장이 먼저 나섰다. 가까운 미래에 철강 수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이유로 부산 가덕도에 제3제철소를 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철강 공급 과잉이라는 주장에 막혀 또 다시 꿈을 접어야 했다.

1996년. 그룹을 총괄하게 된 정몽구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선친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반드시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그때부터 정 회장의 꿈은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었던 셈이다.

정 회장은 2000년 이후 한국 사회는 철강 부족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인천제철 대표로 철강산업에 대한 경험과 경륜을 쌓은 뒤였다. 그래서 더욱 자신있었다. 정몽구 회장은 즉시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을 발족시켰다.

프로젝트팀을 통해 제철소 입지로 선정된 곳은 경남 하동이었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제철소 건립은 통상산업부에서 또다시 공급과잉을 문제로 들며 반대하고 나서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할 순 없었다. 정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 마침내 경상남도와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리고는 건설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환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또 실패였다.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8년 뒤 정 회장은 부도처리됐던 한보철강을 인수했다. 그리고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한보철강의 당진제철소 부지에 선친으로부터 이어져 온 일관제철소의 꿈을 심기위해서였다. 결국 그는 지난 1월, 선친의 꿈이자 곧 자신의 꿈이었던 고로에 불을 당겼다.

◇'친환경 제철소'에서 최고 품질의 철 만든다

현대제철(004020)은 지난 2006년 10월 일관제철소 기공식 이후 3년여 만에 제철소 건설을 완료했다. 이어 철생산의 시작인 고로 화입식을 지난 1월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로소 30년의 꿈을 이루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이 모든 준비는 정몽구 회장의 진두지휘하에 이뤄졌다. 일주일에 몇번씩 헬기를 이용, 충남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을 찾아 안전문제 등을 직접 챙긴 일화는 유명하다. 
                                                                                                                  
▲ 정몽구 회장이 현대제철 제1고로에 화입(火入)을 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이를 통해 선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때부터의 숙원사업이었던 일관제철소 가동을 30여 년만에 이루게 됐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품질경영'으로 지금의 현대·기아차를 일군 그다. 따라서 몸에 밴 '품질 제일주의'는 자동차의 기본이 되는 철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는 연산 800만톤 규모다. 현재 완공된 고로 1호기에 이어 고로 2호기도 올해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조강생산 능력도 연산 2000만톤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다.

게다가 향후 연산 400만톤 규모의 고로 3호기 투자도 예정돼 있어 현대제철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철강사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게될 전망이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친환경 제철소'라는 점이다.

업계 최초로 돔형태의 원료 저장고를 설치했고 항만에서 저장소까지 모든 원료는 밀폐형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운반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제철소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인 철광석·석탄의 소실과 야적장에 보관함으로 인해 생기는 비산먼지 등의 문제도 한번에 해결했다.

◇'수직계열화'를 통한 '시너지 극대화'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를 갖게된 것은 자동차 사업과의 '수직계열화' 뿐만 아니라 기존에 생산하던 전기로 제품과의 '시너지'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현대제철은 고로 가동을 통해 열연강판 650만톤과 후판 150만톤을 생산, 공급하게 된다. 아울러 오는 9월 시험가동에 들어가게 될 연산 350만톤 규모의 C열연공장은 자동차용 강판 전문 생산공장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봉형강류 중심의 제품군은 판재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고 향후 제3고로 진출이 이뤄지면 판재류와 봉형강류 제품 비중이 65:35 수준으로 철강 수요산업 비중에 알맞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된다.

또 일관제철소 가동에 따른 부가적인 사업도 영위하게 된다. 제철소 가동으로 발생되는 제철화학사업의 원료인 콜타르, 조경유, 유황과 시멘트의 원료인 수재슬래그 등의 부산물을 가공·처리해 연관산업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일관제철소 완공과 함께 새롭게 진출하는 후판 분야도 기존 제품과의 시너지를 토대로 빠른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은 이미 조선용 형강과 단조용 잉곳, 조선용 주강품 등을 연간 70만톤 가량을 조선업체들에게 공급해 왔다. 여기에 조선용 후판 공급능력까지 갖추게 됨에 따라 조선업체들의 요청에 일괄적인 제품 공급이 가능해 졌다.

일관제철소 가동은 현대제철에게 고로와 전기로가 조화된 종합 철강회사로의 재도약을 의미한다. 또 현대차그룹 차원에서는 수직계열화의 완성과 함께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 그룹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완성되는 셈이다.

질 좋은 철을 생산,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를 통해 안정적이고 우수한 품질의 자동차 강판을 제공받게되면 궁극적으로 현대차(005380)기아차(000270)의 자동차 품질도 더욱 향상될 것이라는 것이 정몽구 회장의 복안이다. 그가 30여 년간 일관제철소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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