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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민주화 투쟁에 헌신해 오면서 도덕적 우월감으로 지탱해왔던 상당수가 ‘고인 물’이 돼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지면서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고사하고 정당의 미래 조차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날선 비판이었다. 그의 진단이 100% 옳다고 볼 순 없지만 딱히 반박하기도 군색한 게 지금 야당의 모습이다.
◇ 거사 때마다 분열하는 野
주초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안 의원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고 문재인 대표는 “흔들리지 않겠다”며 맞받아쳤다. 문재인 안철수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결국, 또 갈라졌다’는 냉소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이쯤 되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이 꼭 속설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분열의 역사는 뿌리깊다. 87년 직선제 쟁취후 첫 대선때도 김영삼-김대중 두 라이벌이 갈라지면서 ‘다잡은 고기’를 당시 집권당에 헌납하다시피 했다. 2002년 대선때도 노무현-정몽준 후보간의 단일화가 선거 전날 깨지는 홍역을 앓았고 2007년과 2012년 대선때도 뜨뜻미지근한 승복으로 맥없이 대권을 넘겨줬다. 상대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현 여당과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노무현 탄핵정국’에서 거저 주운 총선 승리 말고는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는 야당은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내려갈 기세인 현시점에도 끝없는 세포분열을 거듭하며 합종연횡(合從連衡)만 모색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 합종연횡은 차선책·연명책일 뿐
합종연횡은 중국 전국시대 최강국이었던 진(秦)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나머지 6개국을 상대로 펼쳐졌던 외교전술이다. 당시 전략가였던 소진(蘇秦)은 진나라에 맞서기 위해 나머지 6개국이 연합하는 합종을 제안한다. 그러자 동문수학했던 장의(張儀)는 합종이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라며 진나라와의 개별적인 동맹을 뜻하는 연횡을 주도했다.
문제는 합종연횡의 결말이다. 이익과 노선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이들 6개국은 진에 의해 모두 멸망했다. 자생적인 역량을 키우지 못한 채 이런 저런 형태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힘 한번 못쓰고 사라진 것이다.
지금 야당은 전국시대 6국과 뭐가 다를까. 안철수 신당이 어떤 모습을 갖출지 몰라도 정의당, 천정배신당 등까지 포함한다면 과반 의석을 넘는 거대 여당 앞에서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가 될 수 있다.
◇ 당혹스러운 유권자
탈당을 하든, 남아 있든 지금 야권 인사들의 관심은 누구와 손을 잡고 살아남느냐에 쏠려 있는 듯하다. 경제활성화법 선거구 획정 등 굵직한 정책 이슈들은 한쪽으로 치워져 있고 서로를 헐뜯느라 정부와 여당을 비판할 여유도 없다. ‘평생 야당할 정당’이란 독설이 오갈 정도니 설사 나중에 선거를 앞두고 합치는 모양새를 갖추더라도 반길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오죽하면 야당 지지자들조차 ‘심판해야 할 대상이 정권이 아니라 야당’이라는 이야기가 나올까.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현 야당 같으면 당분간 선거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할 지경이다.
정작 당혹스러운 것은 국민들이다. 여야의 정책 경쟁에 대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쪽이 자멸하고 있으니 선거권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정부 여당에 박수칠 생각도 없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은 해보나마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