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비트 해킹으로 2조 유출…이더리움 롤백 논쟁 격화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거래량 기준 세계 2위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Bybit)가 해킹으로 2조 원 상당의 이더리움을 탈취 당하면서, 블록체인 기록을 해킹 시점 이전으로 되돌리는 ‘롤백’에 대한 찬반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해킹이 북한 해커 집단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만큼 핵무기 개발 등에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롤백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블록체인의 탈중앙성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는 롤백은 절대 불가하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의견이 합치되지 않을 이더리움이 쪼개져 새로운 코인이 생기는 하드포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바이비트 해킹 사건에 따른 ‘이더리움 롤백’ 논쟁이 격화하면서 분열 조짐이 일고 있다.

이번 논쟁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바이비트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 규모의 코인 해킹 사건이 발단이 됐다. 해커들은 바이비트의 이더리움 콜드 월렛(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코인 보관 지갑)에 침투해 이더리움 40만1347개를 탈취했다. 이는 당시 시세로 14억 달러(약 2조140억 원) 상당이다. 해킹 수법과 자금 흐름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이번 공격이 북한 해커 조직인 라자루스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해커 조직이 사용한 주소가 과거 북한 배후의 사건들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이 발견됐다는 설명이다.

바이비트는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벤 저우 최고경영자(CEO)는 “해킹 당한 코인을 회수할 수 없더라도, 거래소는 고객에게 이더리움을 되돌려줄 지불 능력이 있다”고 밝히며 시장 안정에 나섰다. 아울러, 도난당한 코인을 회수하기 위해 보상금 프로그램 운영, 법 집행 기관과의 협력, 이더리움 재단과 논의를 통한 해결책 마련 등 모든 수단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바이비트가 수습책을 발표했지만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선 롤백 필요성이 제기되는 중이다. 롤백은 블록체인 기록을 특정 시점 이전으로 되돌리는 조치를 말한다. 해킹 이전 상태로 블록체인을 되돌리면 해킹으로 코인을 탈취해 간 거래를 무효화하고 도난당한 자금을 복원할 수 있다. 롤백하려면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글로벌 거래소 비트맥스의 공동창업자인 아서 헤이즈는 “이더리움 재단은 10년 전 DAO 해킹에 대응해 롤백을 선택한 적 있다”면서 롤백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비트코인 인프라 개발사 JAN3의 샘슨 모우 CEO도 “롤백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자금 조달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들었다. 이들의 제안은 이더리움이 비트코인과 달리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조롱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나, 이후 롤백 논쟁에 당겼다.

저우 CEO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롤백으로 도난당한 자금을 무효화하는 방안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확실하진 않지만 블록체인 정신에 따라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을 투표로 결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동일한 질문에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롤백은 비현실적이라는 견해를 펼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로 유명한 지미 송은 “사람들이 이더리움 재단이 체인을 롤백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알고 잇지만, 이미 너무 복잡해져서 깔끔하게 롤백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더리움 핵심 개발자들들도 이더리움 메인넷이 레이어2, 스테이블코인, 브릿지 등 상호 연결된 복잡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과거 DAO 해킹 때 처럼 롤백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이더리움의 신뢰성과 중립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롤백 논의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논쟁이 길게 지속할 가능성도 있다. 김형중 한국핀테크학회장은 “블록체인 신뢰성이라는 철학적인 논쟁을 넘어 현실적으로 롤백을 하지 않아 자금이 북한에 흘러들어갈 경우 미국 정부 등에서 북한의 테러자금 조달을 방관했다며 문제 삼을 수도 있는 일”이라며 “블록체인 커뮤니티가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논쟁이 길어질 수 있어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