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주제의 법조계 이야기
저작권 침해 명백하지만 법적 대응은 소극적
영화 홍보 효과 vs 일본의 46억 원 배상 판결
글로벌규제 강화 흐름에 국내 대응 변화 예상
[장현지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최근 유튜브에서는 영화를 10분 내외로 요약한 ‘패스트 무비’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원작의 주요 장면들을 발췌하고 이를 해설하는 방식의 영상은, 배속 재생이나 특정 장면 골라보기 방식 등의 효율적인 콘텐츠 소비를 도모하는 현대인들이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영상들이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도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는 모습을 보고, 일반 이용자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계속 존재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패스트 무비에 대한 영화제작사들의 고민은 깊다. 패스트 무비가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요소들을 명백하게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장현지 변호사. 법무법인 디엘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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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영화의 저작권자는 영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가 된다. 이러한 영화 저작권자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패스트 무비를 제작해 유튜브 등에 업로드하는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원작 영상의 일부를 무단으로 녹화, 일시저장, 또는 다운로드 하는 등으로 복제해 사용하는 것이므로 저작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하며, 이를 온라인 플랫폼에 게시하는 행위는 ‘공중송신권’을 침해한다. 또한 원작 영상을 요약 및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2차적저작물작성권’(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작성해 이용할 권리를 의미한다)의 침해, 원작자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수정, 변형되는 경우에는 ‘동일성 유지권’ 침해도 문제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패스트 무비의 위법성이 명백한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국내 콘텐츠 업계는 이러한 패스트 무비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에 소극적이다. 패스트 무비를 통한 홍보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패스트 무비가 영화의 흥미를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일부 제작사들은 이를 일종의 비공식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예고편과 유사하게, 소비자들이 패스트 무비를 통해 영화를 접한 후 극장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정식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적 조치를 지나치게 강하게 취할 경우, 오히려 일반 대중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패스트 무비에 대해 현재 영화 제작사 및 투자사가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주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관행이 계속될지의 여부는 미지수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패스트 무비가 영화 홍보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거나, 스포일러 문제 또는 관객 유입 감소 등의 위험 요소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업계의 대응 기조는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다. 이미 영화 산업의 글로벌화가 정착된 만큼, 다른 국가들에서 패스트 무비에 대한 강경 대응이 점차 보편화된다면,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즉, 해외에서 패스트 무비에 대한 강화된 법적 제재가 업계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국내 업계 역시 기존의 소극적 대응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2022년경 도호(東寶), 쇼치쿠(松竹), 도에이(東映) 등의 대형 영화 제작사들 및 TV 방송국을 포함한 13개 회사가 패스트 무비를 무단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한 3인에 대하여 총 5억엔(약 4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데에 대해 청구금액 전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참고로, 당시 영화 제작사들은 피해 총액을 20억엔으로 산정했는데, 이 중 일부 청구로서 5억엔의 지급을 청구했고 이것이 전부 인용된 것이므로, 추후 나머지 금원에 대하여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특히 위 패스트 무비 제작자들은 위와 같은 민사상 손해배상 지급 판결에 앞서 2021년 동일한 사안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집행유예의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현재 국가별로, 그리고 콘텐츠 제작사마다 패스트 무비에 대한 대응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향후 시장 환경의 변화와 글로벌 규제 흐름에 따라 국내 콘텐츠 업계 역시 적극적인 대응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패스트 무비는 영화를 홍보하는 긍정적인 기능과 영화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위법의 경계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다만, 향후 영화 제작사와 투자자들의 대응 방향에 따라서는, 이들이 형사 처벌을 받게 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질 위험이 크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패스트 무비를 단순한 홍보 수단으로 두고 볼 것인지, 법적 조치를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장현지 변호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영국 옥스퍼드대 미술사 석사 △대림문화재단 대림미술관/디뮤지엄 큐레이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11회 △(현)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