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사우디 아라비아가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해 테러 혐의를 받은 47명에 대해 집단 사형을 집행했다. 이에 따라 이란 등 시아파 국가에서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중동 지역의 화약고인 종파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모습이다.
사우디 아라바아는 2일(현지시간) 시아파 지도자인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포함해 47명을 사형에 처했다고 밝혔다. 이는 1979년 메카 대성전에 침투한 무장조직원 68명을 처형한 이후 최대 규모의 사형이다.
사형된 이들은 2003년부터 2006년 사이에 사우디 정권을 흔들기 위해 알 카에다 테러공격에 가담했던 수니파 조직원과 반정부 시아파 인사들이다. 이 중에는 사우디 이데올로기 선동자였던 파리스 알 쇼왈리도 포함돼 있다.
특히 시아파 지도자인 알님르가 포함되면서 중동 지역 시아파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알님르는 2011년 동안 아랍의 봄 사위 때 반정부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사우디의 수니파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시아파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아파 사이에서 유력 인사로 부상했다. 하지만 2012년 7월 정권에 대한 불복, 분파 갈등 조장, 공권력에 맞서 무장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됐고 2014년 10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시아파 본산인 이란이 외교통로를 통해 수차례 사면을 요구해왔다. 이란 주재 사우디 대사를 불러 만일 알님르를 사형할 경우 사우디도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사형을 시행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즉각 사우디의 사형 집행에 대해 비이성의 극치이며 무책임한 처사라고 강력하게 비난했고, 아야톨라 알리 이란 최고지도자 역시 3일 알님르의 사형을 정치적 실수라고 규정하면서 “수니파 왕국의 지도자들은 그의 죽음에 존엄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양국이 이미 예멘 내전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알님르 사형을 계기로 더욱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란에서는 대규모 규탄 대회가 일어났다. 시위대가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지르고 건물 일부를 파손했다. 사우디 대사관 앞에서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사진을 불태우는 등 격한 시위가 이어졌다.
사우디 동부 시아파 거주지역인 카티프에서도 소규모지만 알님르의 사형을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레바논 군부인 헤즈볼라 역시 알님르의 처형에 대해 “현 정권의 오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누리 알 말키 전 이라크 총리는 “사형이 사우디 정권을 흔들 것”이라고 우려하는 등 중동내 시아파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가 지배하고 있는 바레인과 UAE는 테러에 맞서기 위한 적절한 조치였다며 사우디를 지지했다. 시아파와 수니파간 갈등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중동 밖에서는 사우디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존 커비 미국 국방장관은 사우디 정부가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 단체들의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휴먼 라이츠 워치의 중동지역 담당 국장인 사라 리 윗손은 “이번 처형으로 종파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사우디 동부 지역의 안정은 사형이 아니라 시아파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중동 지역 종파갈등이 유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슬람 내 종파갈등은 해묵은 이슈지만 이로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면 유가 반등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3월 사우디가 예멘 반군 공습을 개시했을 때에도 국제 유가가 급등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