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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사유를 묻지 마세요[최기훈의 외국기업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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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기자I 2026.09.26 0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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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생활 경험없이 외국계 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내 기업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뒤 30대 후반에 외국계 기업으로 옮겨 고위 임원까지 지낸 금융인은 흔치 않다. 저자가 들려주는 외국계 기업의 문화와 업무 방식, 그 안에서 부딪히고 배운 생생한 장면들은 외국계 기업 취업과 커리어 전환에 관심 있는 2030 독자들에게 현실적인 길잡이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휴가 사유를 묻지 마세요[최기훈의 외국기업 생존기]
[최기훈 아자스쿨 이사] 처음 외국계 회사로 옮긴 뒤 어느 날 부하 직원이 휴가 승인 신청을 올렸길래 가볍게 “무슨 일로 휴가를 내느냐?,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 직원은 좀 당황해하며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인사팀 직원이 나에게 와서 그 일을 언급하며 “일반적인 연차휴가 신청을 받으면 그 사유를 물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내가 “그러면 승인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하자 “다른 직원들과 휴가 중복이 있는지 등 업무에 차질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차원에서 승인 절차가 있는 것이고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질문해서는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하거나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 존중받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외국계 기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경험한 회사들 중에서 1년에 한 번씩 5일 이상 연속으로 휴가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곳도 있고 주니어 직원들도 편하게 2주 이상의 휴가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휴가 시기도 방학 성수기를 피해 봄이나 가을로 선택하기도 한다. 재택근무도 좀 더 활성화돼 있다. 이처럼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측면에서는 좋은 점이 많다. 오래전 처음 외국계에서 근무할 때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놀라기도 했다.

다양한 복지 혜택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이 더 나은 경우도 많다. 경조사는 물론이고 학자금 등 자기계발 지원, 계열사를 이용한 혜택, 휴양시설 이용, 구내 식당과 체육관 같은 각종 편의 시설 등이 아주 다양하다. 외국계 기업도 우리나라에 큰 공장이 있거나 지점망이 있어 수천 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경우에는 대기업과 같은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계열사가 없고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아 이런 제도를 운영하기 힘들다.

경력개발 측면에서도 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주로 순환보직을 통해 여러 업무를 경험하게 해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육성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계는 매트릭스(Matrix) 조직 구조에서 주로 한 분야에서 계속 근무하는데 전문성을 키우는 장점은 있지만 조직 전체를 보는 시야가 제한될 수도 있다. 규모가 작은 외국계의 경우 경력직 위주로 채용해서 바로 현업에 투입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별도로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있기보다는 업무를 하면서 추가로 필요한 역량을 익혀야 하는 경우도 많다.

큰 흐름을 보면 외국계와 우리나라 기업의 차이가 줄어들고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생활 존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휴가를 편하게 사용하는 문화도 많이 확산됐다. 빅테크 기업들은 유명한 글로벌 기업과 유사한 자유로운 기업 문화와 다양한 직원 복지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에는 해외 출장이나 해외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 때문에 외국계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었으나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해외여행은 회사 출장보다 자기 돈으로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가겠다는 젊은이가 많고 우리나라 기업도 해외에 진출한 경우가 많아 단기 체류나 주재원으로 나갈 기회가 종종 있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나이가 들면 뒷짐지고 좀 편하게 지내며 소위 묻어가는 경향도 있었으나 요즘에는 어디를 가릴 것 없이 직위가 올라가도 실무에서 손을 떼기 어렵고 큰 책임과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이처럼 각기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외국계나 국내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각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큰 조직에서 동료들과 서로 가깝게 어울리며 도움을 주고 받고 평생 함께 가는 직장 생활을 원한다면 국내 기업이 더 맞을 것이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은 다양한 복지 혜택은 본인에게 별로 필요 없다고 여기고 “그냥 연봉과 보너스를 많이 주면 활용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하며 외국계를 선호하기도 한다. 직장을 바라볼 때 지금 잘나가는 회사인지, 앞으로 각광받을지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기업 문화가 나와 궁합이 맞을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최기훈 이사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나은행, 미래에셋증권, 피델리티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SC제일은행 등 금융권에서 30여 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국내 최대 체험학습 플랫폼 아자스쿨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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