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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금융위원회는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법령심의위)를 열었다. 한투증권 발행어음 부당대출 여부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 법적인 해석을 구하기 위해서다. 법률 전문가로 구성한 법령심의위는 한투증권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감독원은 심기가 불편하다. 제재심 일정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위의 이러한 법령심의위 자문 결과가 제재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상의 압력 행사로 간주하고 있다. 금감원도 발행어음 업무를 대폭 규제하는 가이드라인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논란 차단이 이유지만 금융위의 압력 행사에 맞불을 놓은 셈이다. 지금 상황에선 이달 금감원 제재심 안건에 재상정할지도 미지수다.
◇금융위, 사실상의 ‘경고’
금융위가 법령심의위의 의견을 발표한 것은 금감원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시기 등을 고려하면 단순히 의견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어서다. 법령심의위는 금융위의 자문기구에 불과하지만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만큼 금감원 제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금융위의 의도 분명해 보인다. 법적인 해석은 분명하니 기존의 강경한 태도를 거두고 ‘무장해제’하라는 것이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법령심의위가 금융위 자문기관에 불과해 금감원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금융위가 자문을 구했고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만큼 앞으로 행정소송 등 문제가 복잡해졌을 때 금감원에 불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령심의위는 법령 해석 관련 자문을 할 뿐이고 판단은 금융위가 한다. 제재심 위원이자 법령해석 권한 기구로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며 “제재는 이와 별도로 금감원 제재심, 증선위와 금융위가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 ‘발행어음 가이드라인’으로 돌파구
금감원은 여전히 강경하다. 금융위 발표에 “유감”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TRS를 통해 사실상 개인에게 발행어음 자금을 빌려주는 전례를 용납할 수는 없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
문제는 금감원 제재심에서 중징계로 결론이 나더라도 증선위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제재수위가 낮아지거나 결론을 뒤집을 수도 있다. 금융위가 취해 온 일련의 과정을 살피더라도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최악을 가정하면 행정소송”이라며 “법원이 금융위 손을 들어준다면 금감원에 닥칠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제재심 일정을 미뤄가며 ‘장고’하는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법률 전문가의 의견이 법원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금감원의 고민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기존 TRS에 대한 판례 중 상당수는 금감원에 불리한 게 사실이다. 법원은 그간 △주식 취득을 위한 자금이 누구의 출연에 의한 것인지 △주식 취득에 따른 손익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두고 실제 보유자에 대한 판단을 내려왔다.
결국 ‘기 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금감원도 실리를 챙기려는 맞불 작전에 나섰다. 발행어음 업무 가이드라인 도입 검토다. 논란 차단이 이유지만 규제 강화를 통해 금융위에는 반발을, 업계에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일거양득’을 노리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투 발행어음 문제만 제재하면 발행어음 영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제재를 하면서 발행어음 업무에 대한 규제를 확실히 해 한투증권처럼 대기업 오너를 우회 지원하는 영업에 대해 금감원이 검사하고 제재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