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속에 '큰 용늪'을 뒤덮은 삿갓사초 등 식물들은 누렇게 변해 있었다. 남한 지역에서는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비로용담'만이 새싹처럼 파랗게 돋아 있었다. 용늪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에는 가재도 보였다.
'큰 용늪' 옆에 있는 '작은 용늪'은 습지 식물이 거의 사라져 풀과 나무류가 군락을 이뤄 '육지화'가 심각한 상태였다. '큰 용늪'과 '작은 용늪' 주변을 따라 난 1㎞의 군 작전도로는 사면에 나무를 심고 큰 돌로 바닥을 포장하는 육지화 방지사업이 한창이었다.
◆천혜의 고원습지 '용늪'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산 170번지의 대암산(1316m) 정상 부근 서북사면 1280m지점에 자리잡은 '용늪'은 '작은 용늪'과 '큰 용늪'으로 이뤄져 있으며 면적은 1.06㎢다.
'작은 용늪'은 이미 육지화가 진행됐다. 비교적 고층습원의 특성이 잘 보존되던 '큰 용늪' 역시 건조화로 습지식물이 고사하는 등 치명적인 훼손을 입었다.
용늪은 1997년 3월 28일 국내 처음으로 람사르 협약 습지 1호로 지정됐다. 또 1989년 12월 29일 환경부로부터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1999년 8월 9일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용늪은 험준한 산악지대의 고원에 위치한 산지습지로, 종(種) 다양성이 매우 풍부해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2007년 1년 동안 국립환경과학원이 조사한 결과, 식물은 252종, 동물은 263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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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습원식물로는 ▲삿갓사초 ▲진퍼리새 ▲끈끈이주걱 등이, 저층 습원식물로는 ▲달뿌리풀 ▲세모고랭이 ▲물꼬챙이골 등이 있다. 철쭉, 가는오이풀, 체꽃, 산새풀 등 산지식물은 물론 동의나물과 숫잔대 등 습지식물의 분포도 다양하다.
동물 역시 멧돼지·고라니·멧토끼·두더지 등과 함께 산개구리와 무당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왕거미과·늑대거미과·깡충거미과 등 일부 곤충은 국내 미기록 종으로 알려져 있다.
용늪의 가치는 4500년 전쯤 형성된 '이탄(泥炭·peat)'에서 찾을 수 있다. 이탄은 낮은 온도로 낙엽이나 습지대의 풀 등이 지표 근처에 퇴적해 생화학적으로 탄화한 것. 석탄의 한 종류지만 석탄과는 구별된다. 습지 내 2m 정도로 두껍게 형성돼 있어 자연환경사 연구에 좋은 대상이 되고 있다.
건국대 지리학과 박종관 교수는 "용늪은 람사르 협약 국내 1호 습지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산지습지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높다"며 "고도가 높아 연평균 기온이 낮고 유기물이 썩지 않는 이탄층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여러 식생들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한국자생식물원 김영철 희귀멸종위기식물연구실장도 "용늪의 습지식물들은 이탄층에 서식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살 수가 없는 것들"이라며 "용늪을 보호하고 살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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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습지를 보호하라
용늪은 여름철(7~8월) 평균 기온이 영상 17도이면서 10월부터 5월까지는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추운 곳이다. 연중 안개 발생 일도 170일 이상으로 습기가 많다. 이 같은 습기를 유지하게 하는 수원(水源)은 용늪 상단부 방면에서 내려오는 계곡수와 용늪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 경사면에서 스며든 지하수다.
그러나 주변 군 작전도로와 도로 사면 등에서 유입되는 토사로 육지화 위기에 놓여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올 4월부터 8개월 동안 용늪의 육지화를 방지하는 육화방지 사업을 추진 중이다. 10억원을 투입해 용늪 주변 도로사면과 나출지(맨땅) 등 1만3913㎡에 참조팝나무와 개쉬땅나무를 심어 훼손된 식생을 복원한다.
용늪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서 양구군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 453번 지방도를 따라 돌산령으로 올라가야 한다. 돌산령 중간쯤에서 군 작전도로를 타고 대암산으로 향하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1994년 8월부터 연구와 조사 등의 목적 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다.
▲ 람사르총회가 열리면서 습지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람사르습지 국내 1호로 지정된 인제군 서화면 대암산 용늪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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