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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 아들도 예외없다'…검찰의 칼은 누가 쥐여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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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아 기자I 2026.09.24 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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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어떻게 자기 목을 겨눴나①]
YS 차남 구속으로 드러난 ‘강한 검찰’…수사·기소권 결합 토대
총장 직할 중수부, 권력형 비리 수사하며 검찰 위상 높여
권력 수사하면서 인사는 대통령·법무부에…독립성 딜레마
‘누구를 잡았나’ 넘어 ‘누구를 수사하지 않았나’로 번진 질문

[편집자 주]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이 문을 닫는다. 기소를 맡는 공소청과 중대범죄 수사를 맡는 중수청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고 현직 대통령의 아들까지 구속했던 검찰은 어떻게 조직의 폐지에 이르렀을까.

검찰의 힘은 법이 부여한 권한과 부패 척결을 요구한 정치권력·여론 속에서 커졌다. 성역 없는 수사에는 박수가 쏟아졌지만, 선택적 수사와 정치적 편향 논란은 신뢰를 흔들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등장, 그 대통령이 다시 검찰에 기소된 과정은 검찰과 정치권력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데일리는 추석 연휴 네 차례에 걸쳐 검찰 권력의 궤적을 짚는다. 김현철 구속과 ‘논두렁 시계’ 논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등장, 검찰청 폐지 이후의 과제를 차례로 살핀다. 검찰이 신뢰를 잃은 이유와 새 수사·기소 기관을 견제할 방안을 묻는다. 간판은 바뀌어도 사건과 피해자는 남는다. 개혁의 성패는 이들에게 더 공정한 수사와 충실한 피해 구제를 보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데일리 백주아 김현재 기자] 1997년 5월 1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청사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에 출석한 지 53시간 30분 만이었다. 아버지와 국민에게 할 말이 없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현철씨를 태운 승용차는 취재 차량들을 뒤로하고 청사를 떠났다. 40분 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철문이 그의 뒤로 닫혔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된 순간이었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가 밝힌 현철씨의 알선수재 혐의액은 32억 2000만원이었다. 김덕영 두양그룹 회장에게서는 신한종금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소송을 도와달라는 등의 청탁과 함께 15억원을, 이성호 전 대호건설 부사장에게서는 케이블TV 사업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등의 부탁과 함께 17억 2000만원을 각각 받은 혐의였다. 기업인들에게서 별도로 받은 돈에 대한 증여세 13억5000만원을 포탈한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1997년 5월 김영삼(YS)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가운데)씨를 구속했다. 현철씨를 태운 차가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1997년 5월 김영삼(YS)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가운데)씨를 구속했다. 현철씨를 태운 차가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사부터 기소까지…법이 부여한 검찰의 권한

대통령의 아들까지 구속한 ‘강한 검찰’의 힘은 오랜 기간 축적된 것이었다. 권력과 돈이 얽힌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은 영향력을 키웠다.

검찰총장 직할 수사조직인 중수부가 그 중심에 있었다. 부패 척결의 성과는 검찰의 위상을 높였지만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도 과제로 남았다. 검찰은 어떻게 이처럼 폭넓은 권한을 갖게 됐을까.

검찰의 힘을 이해하려면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95년 재판소구성법으로 도입된 근대 검찰제도에서 검사는 재판소에 소속돼 수사와 소추를 맡았다. 당시에는 독립된 검찰 조직이 없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기억하는 강력한 검찰의 모습은 이후 한 세기에 걸친 제도 변화와 정치적 선택이 쌓인 결과였다.

해방 이후에는 검찰청법을 통해 조직과 권한의 골격이 차례로 세워졌다. 1954년 제정한 형사소송법은 검사가 직접 범죄를 수사하고,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하도록 했다. 검찰이 직접 사건을 파헤치는 동시에 경찰 수사까지 지휘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는 구조는 검찰의 힘을 키웠다.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일과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 판단하는 일이 검찰에 함께 맡겨졌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도 검찰의 판단을 거쳐야 했다. 법원의 영장 심사와 재판이라는 통제 장치가 있었지만 사건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검찰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넓었다. 누구를 수사하고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 확보한 증거로 기소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과정마다 검사가 있었다.

대통령 가족까지 수사한 중수부…총장에게 집중된 힘

1996년 8월26일 수의를 입고 선고 공판을 기다리는 두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사진=공동취재단)
1996년 8월26일 수의를 입고 선고 공판을 기다리는 두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사진=공동취재단)
이 권한을 대형 권력형 비리 수사에 집중한 조직이 중수부였다. 1961년 발족한 중앙수사국은 1973년 특별수사부를 거쳐 1981년 4월 중수부로 개편됐다. 중수부는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중요 사건을 직접 수사했다. 전국 검찰을 이끄는 총장이 자신의 지휘선 안에 대형 사건을 전담할 수사조직까지 둔 셈이었다. 권력의 외압을 견디며 수사를 밀어붙일 수 있는 조직적 기반임과 동시에 검찰총장 한 사람에게 수사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였다.

중수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사건은 개편 이듬해인 1982년 터진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이었다. 거액의 사기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까지 구속됐다. 금융 범죄 수사가 권력 주변으로 뻗어나가면서 중수부는 권력 주변의 비리를 다루는 수사조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1991년 수서 비리 사건과 1993년 율곡사업 비리 사건 등 굵직한 사건도 중수부의 몫이 됐다.

1995년에는 전직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 됐다. 그해 10월 박계동 의원의 국회 폭로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중수부는 계좌를 추적하고 돈을 건넨 기업인들을 조사했다. 대통령을 지낸 인물과 재벌 총수들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됐다. 11월 16일 노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국회 폭로에서 구속까지 28일이 걸렸다.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1997년 5월, 이번에는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치소로 향했다. 현철씨 구속은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대상으로도 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후 중수부의 수사는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에게까지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의 가족이 수사 대상이 되는 사례가 쌓였다.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 그 검찰은 누가 견제하나

2013년 4월 23일 대검 사무국 박유수 관리과장이 서초동 대검청사 10층에 걸려 있는 대검 중수부 현판을 떼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3년 4월 23일 대검 사무국 박유수 관리과장이 서초동 대검청사 10층에 걸려 있는 대검 중수부 현판을 떼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의 영향력이 커진 배경에는 정치권력의 필요도 있었다. 부패를 척결하고 이전 정권의 비리를 청산하는 일은 정권의 정당성을 세우는 수단이기도 했다. 정권은 수사 성과를 필요로 했고 검찰은 대형 사건을 해결하며 존재 이유를 입증했다. 법이 부여한 권한 위에 정권의 사정 의지와 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여론이 더해질 때 검찰의 힘은 커졌다.

그러나 권력을 수사할 수 있다는 것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당시 검찰청법 제34조는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검사를 임명하고 보직을 정하도록 했다.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을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 규정하되, 구체적 사건에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했다. 검찰은 정치권력을 수사하면서도 인사와 지휘 체계에서는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영향을 받는 구조였다.

현철씨 구속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검찰 수사의 공정성은 논란이 됐다. 1997년 2월 검찰이 한보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거액 대출의 배경을 충분히 밝히지 못하고 권력 핵심을 비켜갔다는 비판이 나왔다. 시민단체는 특별검사를 통한 전면 재수사를 요구했다. 석 달 뒤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한 성과만으로 앞선 수사에 대한 의문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대형 수사는 검찰 내부의 인사와도 맞물렸다. 중수부장을 거친 이종남·김두희·박순용·이명재·김종빈 등이 검찰총장에 올랐다. 권력형 비리를 다룬 경험과 전문성은 조직의 자산이었고 중수부장은 검찰의 핵심 보직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대형 사건을 처리하는 역량과 수사권을 적절하게 행사하는지는 따로 평가해야 할 문제였다.

강한 검찰을 향한 기대에는 권력자의 범죄를 밝혀달라는 요구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해달라는 요구가 함께 담겨 있었다. 검찰은 ‘누구를 잡았느냐’뿐 아니라 ‘누구를 수사하지 않았느냐’에도 답해야 했다. 권력자를 구속한 성과와 별개로 수사 대상을 정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 역시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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