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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칼럼]함께, 더 멀리 가기 위하여

김혜미 기자I 2013.08.28 11:11:20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긴 장마, 잦은 폭우로 채소 값이 치솟으면서 ‘베란다 채소’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상추, 쑥갓 등의 푸성귀를 손수 길러먹는 행위를 이르는 말인데, 가계 경제 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롭고 취미생활까지 즐길 수 있어 집집마다 인기다. 이중 인기 품목은 몸에도 좋고 누구나 쉽게 가꿀 수 있는 방울토마토라고 한다.

그런데 방울토마토의 지적재산권으로 매년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곳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기술이전센터인 ‘이쑴(Yissum)’이다. 이쑴은 히브리대의 교수나 학생이 창업할 때 상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로, 창업을 도와준 기업이 매출을 올리면 일정 수익을 가져가 새로운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방울토마토는 히브리대학교의 나훔 케달, 하임 라비노비치 교수가 이스라엘의 시겐타(Syngenta), 그리고 미국 몬산토(Monsanto)와 합작으로 처음 개발했다. 이쑴은 방울토마토를 비롯해 지식재산권 7000 개, 발명특허 2000건에 대한 기술료 수입으로 매년 13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여기서 독립(Spin off)한 벤처회사만도 80개에 달한다.

이스라엘에는 이쑴과 같은 ‘기술지주회사’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와이즈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가 설립한 기술지주회사 ‘예다(Yeda)’는 매년 전세계에서 100억 달러 이상의 기술료를 거둬들이는데, 테바(Teva)사가 개발한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코팍손(Copaxone), 희망의 표적항암제로 불리는 독일 머크(Merck)사의 얼비툭스(Erbitux Injection)의 원천기술은 모두 예다가 개발한 것들이다.

기술 개발은 어려운 것이지만 하나의 기술이 실용화되어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결코 녹록치 않다. 그 과정을 소위 ‘죽음의 계곡(The death valley)‘이라 부르는데,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실용화로 가는 길목에서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사장돼 버리는 현실을 빗댄 용어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도록 끌어주고 받쳐주는 힘이 있다면, 빛도 못 보고 소멸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미래의 먹거리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 소관 17개 출연연구소는 보유기술의 실용화를 전담할 기술지주회사를 설립, 우수 원천특허의 사업화를 활성화하고 창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힘을 보태기로 했다. 대학별 산학협력기술지주회사가 있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별도의 ETRI홀딩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공동 기술지주회사 설립은 이번이 처음이다. 각자의 전문화된 영역에만 집중하던 출연연구소가 자발적으로 힘을 모으고, 기술 사업화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출연연구소는 530억원 규모 출자금을 조성해 초기 자금 및 마케팅, 회계 등의 경영지원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현재는 출연연구소와 법무·회계 전문가로 구성된 설립준비위원회가 구성돼 공동 기술지주회사 설립에 필요한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올 연말까지 공동지주회사 최고경영자(CEO) 공모 및 법인 설립·등록을 마무리하고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2015년까지 공공기관과 민간 벤처캐피탈 등과 연계해 2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창조경제의 궁극적 가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있다고 본다. 좋은 일자리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창업을 활성화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기술 사업화가 중요한 지점이고,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취임 후 줄곧 산학연 현장을 돌며 기술 사업화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연연이 공동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기술 사업화에 힘을 결집하고, 이를 통해 새 수요, 새 시장, 새 일자리 창출을 선도함으로써 정부와 국민의 신뢰에 값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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