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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집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해놓고 노래를 틀 수도 있지만 회사 전기와 와이파이를 쓰려고 공기계를 가져간다”며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는 만큼 나도 회사에서 뭔가를 가져가겠다는 일종의 반항인 셈”이라고 말했다.
탕비실에서 과자나 음료 챙기기, 회사에서 개인자료 프린트하기, 본인 소유의 전자제품 회사에서 충전하기 등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업무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이를 뜻하는 신조어도 생겼다. ‘소소하고 확실한 횡령’이라는 뜻의 ‘소확횡’이다. 유행어인 소확행(小確幸·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변형한 말이다. 소확횡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확산하고 있다.
표현은 거창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황당한 것들이 많다. 퇴근하기 직전에 탕비실에서 과자를 가져다가 친구들에게 나눠주거나 꼭 필요하지 않아도 사무용품을 신청하는 식이다.
심지어는 출근한 후에 화장실을 들르는 것이 자신의 소확횡이라는 직장인도 있다. “근무시간에 화장실에 있으면 돈 버는 기분”이라는 게 그 이유다.
직장인이 아닌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도 일하는 카페에서 빨대나 종이컵을 챙겨왔다는 소확횡 경험담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들은 “오죽하면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박모(27)씨는 “상사가 과중한 업무를 요구할 때면 ‘부려 먹는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며 “힘없는 부하직원이 할 수 있는 소소한 복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강모(26)씨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생활에 치이다 보면 그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시간도 내기가 힘들다”며 “소확횡은 신입사원 버전의 소확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장난처럼 벌이는 행동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비난도 나온다. 소소하다고는 하지만 회사 물품을 사적으로 쓴다는 점에서 횡령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4년차 직장인 김모(29)씨는 “과자 집어가는 것 정도야 애교로 보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쓸 서류를 회사에서 프린트 하는 등 회사 비품이나 물건을 함부로 쓰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소규모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소확횡이 직원들의 말처럼 소소하지만은 않다며 불쾌해한다.
경남 창원에서 소규모 IT업체를 운영하는 이모(35)씨는 “직원들 입장에선 어쩌다 한 번일지 몰라도 회사 물품 전반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확횡은 회사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개인 차원에서 해소하려는 사회현상 중 하나”라며 “근로자가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가 부족한 한국 사회의 특성도 소확횡 현상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