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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현수막만 빼곡한 역전 상가…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는 먹자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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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기자I 2026.04.24 05:10:03

[불 꺼진 혁신도시, 선거 앞 유치전②]
역 앞부터 ‘텅텅’…김천혁신도시 상가 절반이 공실
점심장사 반짝, 주말엔 서울로…출퇴근 인구만 늘어
필수 인프라 없는 ‘뜨내기 도시’…주거 부족 현상도
공실 vs 집값 급등…2차 이전, 산업 연계 여부 관건

[김천·나주=이데일리 김은경 이다원 기자] 지난 22일 오전 경북 김천구미역. 캐리어를 끈 비즈니스 차림의 직장인들이 앞다퉈 KTX에서 내렸다. 하지만 역 밖으로 나가자 ‘역 앞’이라는 말이 무색한 풍경이 펼쳐졌다. 가장 붐벼야 할 역전 건물부터 상가 전체가 통째로 비어 있었고 외벽에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경북 김천혁신도시에 설치된 기념비 뒤로 공실 상가가 보이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 2차 이전을 추진하는 가운데 1차 이전 지역의 모습은 기대와 거리가 있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16년 준공된 김천혁신도시 집합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기준 43%에 달한다. 현장에서는 이 수치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천구미역 앞 100평 이상 규모의 24시간 마트는 쇼핑카트만 남겨둔 채 내부가 텅 비어 있었고 인근 대형 식당 역시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건물 분양·임대 홍보관마저 문을 닫았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더 심각했다. 간판이 철거된 자리에는 전기선이 어지럽게 튀어나와 있었고 폐업한 상가의 흔적만 이어졌다. 거리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지난 22일 경북 김천혁신도시의 영업을 중단한 한 마트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택시기사 A씨는 “인근 상가는 거의 다 비어 있다고 보면 된다”며 “아파트는 공실이 적지만 구도심에서 이사 온 사람이 많아 신규 유입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이면 다 빠져나가 사람 자체가 없다”며 “세를 못 놓고 방치된 상가가 많고 상가 투자했다가 손해 본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김천구미역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한국전력기술·우정사업조달센터·한국도고공사 일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심 수요가 형성돼야 할 입지임에도 치킨집·카페·음식점 상당수가 비어 있었고 ‘임차료 80% 3년 지원’ 현수막까지 내걸려 있었다.

혁신도시 상가 공실률 현황
상권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입점이 이어지지 않는 점은 수요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근에서 수제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B씨는 “주말 장사가 돼야 하는데 금요일 저녁부터 손님이 빠진다”며 “버티다 못해 가게들이 줄줄이 나가 지금은 몇 곳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KTX로 이동이 편하다 보니 오히려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김천혁신도시 인구는 계획인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5월 기준 인구는 2만3383명으로, 당초 계획인구(2만6715명)보다 적다. 30~40대 비중이 높고 생산가능인구도 많지만 인구 흐름은 오히려 감소세다. 2024년 순이동 인구는 369명 순유출을 기록했고, 전입 인구도 최근 5년간 연평균 8% 줄었다.

지난 22일 경북 김천혁신도시 한 건물에 ‘최대 3년까지 임대료 보조금을 최대 80% 지원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같은날 찾은 전남 나주혁신도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전력 본사와 한전KDN,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이 밀집한 중심 상권조차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유동 인구가 제한적이었고 일부 먹자골목은 건물 단위로 공실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연구기관 인근에서는 상권 자체가 형성되지 못한 모습도 확인됐다. 국립전파연구원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인근은 한 구역이 통째로 비어 있었고 4층짜리 건물이 전부 공실 상태인 곳도 눈에 띄었다. 현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상가 공실 문제는 오래 이어진 상황”이라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 수준으로 낮춰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는 거주와 소비가 분리된 ‘비정착형 도시’ 구조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나주 혁신도시에 거주 중인 40대 공공기관 직원 C씨는 “주말이면 사람도 집주인도 없는 뜨내기인 도시가 되어버린 셈”이라며 “병원이나 문화시설 같은 필수 인프라도 부족해 생활 불편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전남 나주혁신도시 내 먹자골목 1층이 통째로 비어 있다. (사진=이다원 기자)
반면 경남 진주혁신도시는 또 다른 양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의 공공기관 이전 이후 주택 수요가 집중되면서 주거비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일부 아파트는 전용 84㎡ 기준 6억~7억원대를 형성하며 수도권 외곽과 유사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는 공급 부족과 투자 수요 유입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이처럼 혁신도시는 지역에 따라 상권 공실과 주거비 상승이라는 상반된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공통적으로는 정주 여건과 생활 인프라, 지역 산업과의 연계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목된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공공기관 2차 이전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하반기 발표할 예정이다. 입지 선정 기준과 정주 여건 개선 방안을 포함하고 지역 전략 산업과 기관 기능을 연계하는 ‘클러스터형 이전’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정주 여건 개선과 산업 연계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1차 이전에서 드러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제대로 된 2차 이전을 위해서는 단순히 기관만 옮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주 여건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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