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신용팽창이 금융위기 원인…안정이 성장의 전제"

송승현 기자I 2025.08.19 05:40:00

■만났습니다-고승범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금융위기 3차례 경험…"과도한 신용 위기가 원인"
"디지털 전환·저출산 및 고령화 대응이 과제"
"태평양과 오랜 인연…금융분야 전문성 살릴 것"

[이데일리 송승현 성주원 기자] “금융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 바탕으로 성장과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과도한 신용이 금융위기를 일으킨 사례가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어 금융안정 없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제8대 금융위원장 출신 고승범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1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안정, 금융발전, 경제성장 간의 트라이앵글 관계가 중요하다”며 “금융안정이 바탕이 되어야 금융발전도 가능하고 경제성장도 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2022년 7월 금융위원장직을 마친 고 전 위원장은 지난 3년간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등으로 활동해왔다. 2023년 10월부터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금융교육 혁신에 힘써오다 최근 태평양에 합류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고승범 고문(전 금융위원장). (사진=이영훈 기자)
“과도한 신용팽창, 금융위기 원인…금융안정이 성장의 전제”

고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겪어온 주요 금융위기를 직접 경험한 인물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정책국 총괄서기관으로, 2003년 신용카드 사태 때는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과장으로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서는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으로 위기 대응 최전선에 서왔다.

그는 “세 차례 금융위기의 공통분모는 모두 과도한 부채와 신용팽창”이라며 “외환위기 때 기업부채비율이 400%를 넘었고, 신용카드 사태는 경기부양을 위한 소비진작 정책으로 카드빚이 급증했으며, 저축은행 사태는 2000년대 중반 부동산 활황으로 PF(프로젝트 파이넨싱)대출이 급증한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고 전 위원장은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어떤 리듬이 있다’”며 “그 리듬이 바로 ‘과도한 부채와 신용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636년 네덜란드 튤립 버블부터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까지, 세계 금융위기 역사를 보면 과도한 유동성 공급이 자산 버블을 만들고 이것이 붕괴되면서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고 전 위원장은 금융발전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유동성 비율로 금융발전을 측정하지만, 유동성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금융발전이라 할 수 없다”며 “1980년대 남미 외채위기가 대표적 사례로 금융시장 개방과 유동성 증가가 오히려 경제위기를 초래했다. 금융발전을 유동성이 늘어났다는 것으로 평가하면 패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전 위원장은 동시에 자본시장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벤처기업과 혁신기업이 성장하려면 은행 대출보다는 투자가 어울린다”며 “10개가 망해도 1개가 엄청나게 성장하면 성공하는 것이 벤처의 특성인데, 이런 역할을 하려면 은행대출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대신 자본시장이 발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이 지나치게 부동산 중심인 것도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고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국민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이고 일부가 주식 등 금융자산인데, 선진국은 거꾸로”라며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것도 자본시장의 몫”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고승범 고문(전 금융위원장). (사진=이영훈 기자)
“디지털전환·저출산고령화·기후변화, 3대 트렌드 주목해야”

고 전 위원장은 현재 금융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로 디지털 전환, 저출산·고령화, 기후변화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특히 ‘디지털 전환’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면서도 금융안정에 대한 우려를 함께 제기했다.

그는 “미국 유명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자신들을 (금융기업이 아닌) 테크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금융의 디지털 전환 관련 변화가 크다”며 “인공지능(AI) 활용 등 디지털 혁신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항상 강조하는 것은 혁신이 금융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금융권에 불고 있는 망분리 규제 완화다. 고 전 위원장은 “망분리 규제가 금융에서의 AI 활용을 막는 허들이었는데 금융위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보안이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 생긴 규제였던 만큼 (금융권이 AI를 활용하면서도) 보안문제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가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소득 3만달러 이상인 미국, 일본 등 7개국 중 하나가 된 것은 대단한 성취”라면서도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앞으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금개혁, 기업구조조정 등 여러 개혁과제의 추진이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이 금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금융이 경제성장과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의 로펌 태평양 고문으로…“새출발, 설렌다”

고 전 위원장은 금융위원장 등의 경험을 살려 태평양 고문으로서 태평양 금융그룹과 미래금융전략센터를 통해 금융 전반에 대한 자문을 제공할 예정이다.

고 전 위원장은 “태평양은 전통이 있는 로펌이고 금융위에 있을 때도 태평양이 정부를 도와서 하는 일이 있었다”며 “금융규제 분야에 훌륭한 변호사들이 많고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앞으로 많은 금융 관련 이슈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태평양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게 역할을 하겠다”며 “다시금 금융현장으로 돌아와 설레는 마음도 크다. 금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 △1962년 11월 9일 서울 출생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경제학 박사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제8대 금융위원회 위원장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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