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 돌연 간첩죄 확대 반대...소잃고 외양간 고칠 건가

논설 위원I 2024.12.04 05:00:00
더불어민주당이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국가 핵심기술 및 기밀 유출 사건이 잇따르고 산업계의 피해가 급증하자 정부·여당은 물론 민주당 일각에서도 간첩죄 범위 확대를 주장해 왔지만 당 지도부가 우려 의견을 내자 반대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13일 법안심사 제1소위를 통과한 개정안 심의를 중단했다.

민주당이 정당법 위반 범죄의 공소시효를 6개월로 제한하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안으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덮으려는 등 당리당략에 따라 입법권을 남용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하지만 형법 98조의 간첩죄 적용 범위 개정은 차원이 다르다. 나라의 미래 먹거리가 달렸다. 현행 형법은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상 적국은 북한뿐이어서 제3국을 위한 간첩 활동을 적발해도 간첩죄로 다스리기 어렵다. 7년 이상의 징역에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간첩죄 대신 형량이 가벼운 다른 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에서 국가핵심 기술을 지키는 최고의 수단은 물샐틈없는 보호막과 함께 엄격한 법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한경협에 따르면 ‘기술 굴기’를 외치며 경쟁국을 맹추격한 중국은 최근 10년간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7개 부문 세계 수출 점유율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추월 비결의 하나가 중국의 벤치마킹 전략에 있었다면 그 배경에는 줄줄 샌 우리의 최첨단 기술과 고급 인력 유출이 자리잡고 있다. 디스플레이산업 유공자로 장관상까지 받은 삼성디스플레이의 수석연구원이 국가 핵심기술 유출로 최근 검찰에 구속된 것은 사소한 예일 뿐이다.

핵심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이 지난 3월 최대 징역 18년형까지 상향 조정됐지만 허술한 법 제도로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 기술유출 범죄로 매년 약 6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국가정보원 분석은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 코인 과세를 연기한 민주당은 778만여 투자자들이 가진 표만 두렵고 나라가 입을 피해는 안중에도 없나. 다수당의 무책임 탓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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