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원회 시절 때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 △고용안전망 강화 및 지속가능성 제고 등 노동 부문 7개 대과제를 제시했습니다.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과제엔 공정한 채용기회 보장, 취약계층 노동권 보호 등의 소과제가 담겼습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과제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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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이해관계자가 복잡해 바꾸기 어려운 법을 개정하거나, 법을 만들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연금 개혁처럼 말이죠. 그런데 윤 정부는 노동 부문에선 ‘이미 있는 법을 잘 지켜라’는 것을 개혁 과제로 내세웠습니다.
그 속에 담긴 뜻은 ‘노동계는 법을 안 지킨다’는 거였고, 그러므로 개혁 대상은 노동계가 됐습니다. 고용부의 업무보고에서 노사 법치주의 확립 내 첫 소과제가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였던 것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노조 회계와 관련해선 4월 5일 <막 내린 윤석열식 노동개혁[노동TALK]>에서 다뤘으므로 이번엔 다루지 않습니다).
윤 정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게 개혁이어야 하고 이는 사회적 대화로 다뤄야 하는데, 윤 정부는 법치 확립을 노동 개혁의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법치 확립은 사회적 대화가 성립될 수 없는 과제였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회적 대화로 다룰 수 없는 과제이니 개혁 과제가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노동법 교과서는 노사관계의 기본 원칙으로 ‘노사 자치’를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윤 정부가 노사 법치를 내세운 건 (사용자 관점에서) 부당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모든 사회가 그러하듯 노동계 내에서도 법을 지키지 않고 정말 부당한 관행을 이어가고 있는 일부 조직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노사 법치가 노동 개혁의 과제가 될 순 없었습니다. “물밑에서 작업하면 될 일이었다”고 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 맞습니다.
윤 정부는 성립되지도 않고, 그 목적과 필요성조차 모호한 노동 개혁을 1년 반 동안 추진하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작 가장 시급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취약계층의 노동권 보호 등 과제는 집권 3년 차에서야 시작했고(‘노동약자지원보호법’ 제정 추진은 윤 정부식의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과제였습니다), 정년 제도 개편과 노동시간 단축 등 국민이 체감할 개혁 과제는 2024년 하반기 들어서야 다뤄졌습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민주주의에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가한’(헌법재판소 ‘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 결정문) 윤 전 대통령에 의해, 그의 임기 반환점을 돌아 그나마 추진되던 노동 개혁마저 모두 멈춰 섰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