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블록체인 웹 3.0 기업답게 3월부터 새로운 인사 실험을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창업전선에 뛰어든 표 대표는 체인파트너스를 2017년에 설립하고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 민간위원을 맡는 등 블록체인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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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유산슬처럼 다양한 캐릭터로”
표 대표가 도전하는 인사 실험은 이른바 ‘다오(DAO)형 채용’이다. 다오(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란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을 뜻한다. 익명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빠르게 모여 블록체인에 기반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조직이다 .
다오라는 용어는 이더리움을 만든 해외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최초로 사용했다. 국내에서는 올해 1월 간송미술관의 국보 경매에 다오 프로젝트로 20여억원이 전 세계에서 모금되면서 다오의 잠재력이 주목받았다. 특정 국적·회사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코로나19 비대면 사회에 적합한 모습이어서다.
표 대표는 이 같은 다오 특성을 채용에 전면 도입했다. 이는 회사가 예정된 데드라인까지 좋은 결과물만 나오는지를 체크할 뿐 출퇴근 시간·장소, 근무 방식·형태 등을 직원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톱다운 방식으로 하달되는 지시 없이 탈중앙화된 조직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우선 회사 출근·회식부터 없앴다. 그는 “오락기 등을 설치해 사무실을 바꿀 게 아니라, 회사 가기 싫은 직원들이 집에서 원하는 소득을 벌게 하는 게 최고의 복지”라며 “불필요한 회의·회식도 없다.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 있지만, 만나기 싫은 직원은 굳이 안 만나도 된다”고 했다.
한 회사에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표 대표는 “꼭 한 회사에 출근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묶여 일해야 할까”라며 “직장인들이 남몰래 투잡·쓰리잡 등 여러 일을 하는 N잡을 하고 있고 ‘부캐(부캐릭터)’ 열풍인데, 고용 형태를 느슨하고 탄력적으로 바꾸면 안 될까”라고 반문했다. 방송인 유재석 씨가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란 익명으로 부업 캐릭터 역할을 하듯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일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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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만 체크, 나머지는 묻고 따지지 않아”
기존의 프리랜서와는 어떻게 다를까. 표 대표는 “예를 들어 블록체인 기술·서비스 관련 홍보를 할 때 PR대행사나 프리랜서에게 깊이 있는 회삿일을 맡기기 힘들다”며 “오히려 이럴 때는 채용해서 일을 가르치기보다는 다오형 채용으로 블록체인 전문가를 모시는 게 낫다. 전문가도 익명으로 부업을 할 수 있어 양쪽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공개를 원하는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온라인 접속 시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는 ‘블라인드 면접’도 도입했다.
급여는 채용된 직원들이 매월 말 각자 원하는 보상을 청구하면 체인파트너스가 검토해 지급된다. 원화뿐 아니라 코인으로도 지급받을 수 있다. 표 대표는 “모집 공고를 낸 지 사흘 만에 15명의 20~40대 인재들이 몰렸다”며 “해외 대기업·정부기관 직원들도 비대면 원격으로 일하고 싶다며 지원했다. ‘돌아온 너구리’라며 익명으로 캐릭터 사진을 보낸 분도 있어 재밌는 새로운 채용을 경험 중”이라고 전했다.
표 대표는 “오는 18일까지 10~20명 정도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응시자가 경력을 속일 우려, 넉넉한 일감을 줘서 업무 연속성을 유지하는 과제 등도 고민하고 있다”며 “이번 인사 실험이 성공해 제대로 일하지 않는 ‘프리라이더’ 직원 문제를 해소하고, 여러 곳에서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을 더 늘릴 수 있는 새로운 다오형 고용 문화가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