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가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에 앞서 내놓은 태영건설의 자구안을 두고 ‘안타깝다’며 비유한 말이다. ‘만시지탄’은 기회를 잃고 후회한다는 뜻이고 ‘곡돌사신’은 화근을 미리 방지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대통령실과 국무총리, 금융당국 수장에 이르기까지 강도 높은 자구안을 요구하며 재차 태영그룹에 성의있는 추가 자구안 제출을 요청했으나 태영그룹은 ‘성문’을 굳게 닫고 요지부동이다. 과연 이 시점에서 ‘수성’이 그들에게 ‘비책’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한시가 바쁜 와중에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태영그룹의 태도를 이해하기 더욱 어렵다.
지난달 28일 태영건설은 4조 6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태영건설은 무려 581개 협력업체와 5조 8000억원의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정부는 부동산 PF 시장 전체로 부실이 번지고 수많은 하도급사가 쓰러질 것을 우려해 전폭적인 지원 약속과 함께 고강도의 자구안 마련을 주문했다.
윤세영 창업회장이 지난 3일 채권단 설명회에서 “이대로 태영을 포기하는 것은 저만의 실패로 끝나지 않으며 협력사, 계약자를 비롯해 채권단에도 아픔과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를 두고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 담보와 사재출연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전액 지원했다’는 태영 측의 설명은 ‘꼼수’로 밖에 안 보인다고도 했다.
매각대금 중 지주사 티와이홀딩스 연대보증 채무에 쓴 890억원은 온전히 태영건설 지원에 썼다고 보기 어렵다. 이 돈은 티와이홀딩스가 애초 태영건설에 지원키로 한 자금으로 연대보증 채무를 상환해 티와이홀딩스의 리스크를 줄인 것일 뿐이다. 즉 티와이홀딩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태영건설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게 아니다. 지난 5일 티와이홀딩스는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을 대상으로 416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했다고 공시했다.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매각 금액인 416억원을 출연해 태영건설을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이 돈을 태영건설에 직접 지원하는 대신 티와이홀딩스에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에 대비해 티와이홀딩스 연대보증 채무상환과 자본 확충을 하면서 지주사와 SBS 지키기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두고 채권단과 당국 관계자들은 “황당하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선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과 기업인의 바람으로 작년 말 정부가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워크아웃 취지는 살릴 만한 기업은 살려내 해당 기업에 재기 기회를 주고 국민 경제에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볼모 삼아 대주주가 해야 할 몫을 피한다면 명백한 도덕적 해이다. 구순의 창업회장이 “국가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까 너무나 두렵다”며 흘렸던 눈물이 ‘악어의 눈물’은 아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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