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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기후, 낮아지는 기술자격[최종수의 기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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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I 2026.09.01 0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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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눈높이 높아지는데
토목·환경·건축 기술사
실무경력 '4→2년' 단축
규제 혁신이란 이름으로
안전·전문성 낮춰선 안돼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 최근 극한강우로 옹벽이 무너지고 도심 침수가 반복되는가 하면 건설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안전 불감증’을 질타하며 더 엄격한 안전대책을 요구한다. 그런데 현장 안전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정작 그 안전을 뒷받침해야 할 제도적 기준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규제 혁신’이라는 명분 아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전문성의 기준마저 낮추려는 셈이다.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아파트에서 차량이 파손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아파트에서 차량이 파손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러한 자격 기준 완화가 토목·환경·건축 등 주요 인프라 분야의 최고 기술자격인 ‘기술사’까지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 기사 자격 취득 후 기술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필요한 실무 경력을 현행 4년에서 2년으로 대폭 단축하는 등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청년층의 상위 자격 취득 진입장벽을 낮추고 기회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청년 기술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과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기준을 낮추는 것은 다른 문제다. 더욱이 일부 분야에서는 일정한 경력을 갖춘 기사나 특급기술인이 기술사를 대신해 법정 인력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최고 기술자격의 역할을 다른 경력 인력이 대신할 수 있는 길이 이미 열린 상황에서 이제 기술사 응시에 필요한 경력 기준마저 절반으로 줄이려는 것이다.

물론 현장 실무 경험과 노하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최고 기술자격에는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능숙하게 수행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여러 대안을 비교해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나 기존의 경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충분한 현장 경험과 탄탄한 이론적 기반 그리고 이를 종합해 판단하는 능력이 함께 필요하다. 기술사는 바로 이러한 경험과 전문성을 충분히 축적한 기술자에게 부여되는 최고 수준의 자격이어야 한다.

오늘날의 기술 환경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가 고도화하면서 도로와 철도, 건축물과 지하공간 등 각종 인프라는 더욱 거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고 기후변화로 과거의 경험과 기준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폭우와 폭염도 잦아지고 있다. 작은 판단 하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종전의 경험과 노하우만으로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럴수록 복잡한 위험을 미리 살피고 여러 조건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자격 기준의 하향 평준화는 장기적으로 국가 기술 생태계의 근간을 병들게 할 수 있다. 오랜 학습과 실무 경험을 거쳐 최고 기술자격을 취득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전문성과 역할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누가 이 쉽지 않은 길을 걸으려 하겠는가. 기술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을 쌓으려는 동기가 약해진다면 이는 결국 국가의 기술 역량도 약화될 수 있다. 해외의 기술자격 제도와 비교해 보면 답은 더 분명해진다. 미국과 일본도 기술사와 유사한 자격이나 면허를 부여할 때 일반적으로 4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요구하며 일본은 응시경로에 따라 7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고 기술자격의 경력 기준을 낮추는 문제를 국내 자격제도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 기술인력의 전문성과 국제적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규제 혁신은 필요하다. 낡고 불합리한 장벽은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그러나 기술자격 제도는 단순한 행정 규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마련한 최소한의 안전 기준이다. 청년 기술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현장의 기술인력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해법이 최고 기술자격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술자들이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쌓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당한 역할과 대우를 마련하고 스스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성장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규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안전과 전문성의 기준까지 낮춰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산업계는 무엇을 완화하고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다시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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