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28년 모터스포츠 도전 새 역사 쓰다
1998년 FIA 랠리 첫 출전, WRC 우승 등 경험 쌓아
한국 브랜드 최초 르망 하이퍼카 클래스 출전·완주
브랜드 고도화·미래 기술 개발 플랫폼으로 진화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1923년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 레이스 ‘르망 24시(24 Hours of Le Mans)’ 무대에 지난 13~14일(현지시간) 한국의 경주차가 처음으로 올라섰다. 르망 24시는 국제자동차연맹(FIA) 세계내구레이스챔피언십(WEC)의 연간 8개 라운드 가운데 유일하게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상징적인 경기다.
현대차그룹의 모터스포츠팀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GMR)은 2026 WEC 3라운드인 르망 24시 하이퍼카 클래스에 ‘GMR-001’ 두 대를 출전시키며 한국 브랜드 최초의 도전에 나섰다. GMR-001 19호차는 24시간 동안 라 사르트 서킷(13.626㎞)을 총 372랩, 약 5069㎞ 주행하며 하이퍼카 클래스 18대 중 최종 1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 브랜드 최초의 르망 24시 출전이자 완주였다.
 | | 프랑스 르망에서 열린 드라이버 퍼레이드에서 '제네시스 X 그란 컨버터블'을 운전하는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GMR) 어드바이저 재키 익스(운전석)와 (뒷자리 왼쪽부터) GMR 드라이버 마티스 자비에, 루이스 펠리페 데라니, 안드레 로테러가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네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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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사적 장면의 출발점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현대자동차는 FIA 산하 국제 랠리 대회에 처음 참가하며 한국 완성차 브랜드의 글로벌 모터스포츠 도전을 알렸다. 이후 2000년 세계랠리선수권(WRC)에 본격 진출하며 한국 자동차 브랜드 최초로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포드, 푸조, 시트로엥 등 수십 년의 모터스포츠 역사를 쌓아온 강자들과 비포장 흙길에서 경쟁하며 격차를 실감한 현대차는 2003년 재정적 문제로 잠시 WRC 무대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실패의 교훈’은 오히려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2012년 12월 독일 알체나우에 모터스포츠 전담 법인을 설립한 현대차는 2014년 WRC에 재도전했다. 첫 해는 4위로 만족해야 했으나 해를 거듭하며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제조사 부문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뜻 깊은 이정표를 세웠다. 현대 월드랠리팀이 그해 WRC에서 4차례 우승, 13차례 포디엄 입성을 기록하며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시즌이 대폭 축소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제조사 부문 2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 | 현대자동차가 2019 WRC에서 참가 6년 만에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차지하고 환호하는 모습. 현대 월드랠리팀 소속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 선수가 스페인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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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 연속 우승의 여세를 이어받아 현대차그룹은 모터스포츠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고성능차 브랜드 ‘N’을 앞세워 월드투어링카컵(WTCR)에서도 팀·드라이버 부문 우승을 거두며 투어링카 레이스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전기차 투어링카 레이스인 ETCR에 ‘벨로스터 N ETCR’로 참가하는 등 전동화 전환기에 발맞춰 레이스 무대에서도 친환경 기술의 가능성을 검증해 나갔다.
WRC에서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이 선택한 다음 무대는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 레이스 르망 24시다. 올해 르망 24시 예선 격인 하이퍼폴에서 19호차가 6위, 17호차가 9위 그리드를 확보하며 두 대 모두 톱 10에 이름을 올렸다. 결선 레이스에서는 19호차는 여러 차례 트랙 위에 멈춰서는 위기를 겪었지만 피트에서 수리하고 다시 복귀하며 국내 팬들로부터 ‘좀비 19호’라는 애칭과 함께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 17호차는 레이스 16시간을 넘긴 시점에 서스펜션 고장으로 중도하차했지만, 차량에 남은 주행 데이터는 다음 레이스를 위해 분석할 귀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 | 제네시스의 '르망 24시간' 첫 출전을 기념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CDO 겸 CCO와 13일(현지시간) 제조사 빌리지 내 제네시스 부스에 전시된 차량과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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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르망 24시간 결승선을 통과하는 GMR-001 하이퍼카 19 차량. (사진=제네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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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번 르망 24 완주가 단순한 완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한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이번 24시간 극한 레이스를 통해 냉각·내구·공력·에너지 관리 분야의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축적했으며, 이는 향후 고성능 양산 모델 개발에 직접 활용될 예정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레이스를 통해 얻은 경험은 마그마 퍼포먼스 차량 개발과 사업 운영 전반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르망 24시 현장에서는 GMR-001 하이퍼카와 함께 제네시스 마그마 GT3 콘셉트도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제네시스 측은 이 콘셉트가 GT3 규정을 기반으로 레이스카 중심의 아키텍처를 먼저 구상한 독립적 연구 프로젝트임을 강조했다. 향후 고객 레이싱 시장에서도 제네시스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올 시즌 남은 WEC 라운드에도 계속 출전하며, 2027년부터는 국제모터스포츠협회(IMSA) 웨더텍 스포츠카 챔피언십까지 참가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기술을 증명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 자동차의 모터스포츠 여정은 르망 24시 포디움을 향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