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반도체를 넘어 전력 확보전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일부 지역의 전력망이 한계에 이르면서 전기요금 인상과 전용 요금제 도입 논의까지 하고 있다. AI 산업의 최대 병목이 전력이라는 경고도 잇따른다. 올해부터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AI 인프라 확대의 가장 큰 제약 요인도 전력 문제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국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과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첨단산업 육성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시설, 네이버를 비롯한 기업들의 초거대 AI 투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과 송전 인프라는 제자리걸음이다. 수도권은 계통 여유가 부족하고, 신규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은 주민 반발과 복잡한 인허가 절차로 수년씩 지연되는 일이 반복된다. 기업은 투자 준비가 돼 있는데 국가 인프라가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54개 송전망 사업 중 20개가 주민 반대·지자체 인허가 지연으로 늦어지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전력시장 시스템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다. 전기요금은 여전히 정치적 고려에 좌우되고,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하는 구조다. 전력망 확충과 발전설비 투자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요금 체계가 왜곡되면 투자 여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 경쟁력을 내세워 전기요금을 무조건 누르는 것은 ‘NIMT’(내 임기 중엔 불가)일 뿐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다. 반도체 공장 역시 순간적인 전력 차질조차 치명적 손실로 이어진다. 각국이 데이터센터 유치와 전력망 확충, 전력시장 개혁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 시대의 산업정책은 반도체 증산이나 GPU 확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충분한 전력과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정부는 AI 육성을 외치기보다 AI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부터 정비해야 한다. 송전망 건설의 규제를 개선하고, 발전설비 확충을 서두를 시점이다. 전기료도 원가와 수급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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