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부 이상 판매된 장편소설 ‘페인트’로 잘 알려진 이희영(49) 작가는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이의 헌신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신간 소설 ‘낙하’(오리지널스)에 이런 문제의식을 담았다. ‘낙하’는 화자인 ‘나’가 친구 잎새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보여주는 액자형 구조로, 재혼가정을 통해 금기된 감정과 가족의 복잡한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가는 “가족은 가장 따뜻한 공간이지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며 “그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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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로 2013년 제1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페인트’로 2018년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제10회 5·18문학상 소설 부문, 제3회 등대문학상 최우수상 등을 받으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그가 쓴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는 ‘가족’이다. ‘페인트’에서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묻고, ‘보통의 노을’에서는 젊은 엄마와 아들의 삶을 통해 ‘보통의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들여다봤다. 신작 ‘낙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 온 관계를 파고든다.
이번 작품이 그리는 가족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균열을 안고 있다. 부모의 재혼으로 하루아침에 남매가 된 ‘정’과 ‘현’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감춘 채 살아간다. 장녀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희생을 요구받는 ‘정’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K장녀’의 현실도 담아냈다. 이 작가는 “첫째라는 이유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여전히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가족은 기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을 옭아매기도 한다”고 짚었다.
작품의 묘미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끝내 드러내지 못하는 ‘정’과 ‘현’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데 있다. 두 사람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어렵게 지켜온 가족은 무너지고, 어린 동생 ‘진’의 삶까지 흔들릴 것이 분명하기에 끝내 침묵을 택한다. 그러나 애써 눌러온 마음은 결국 흘러넘치고,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을 단숨에 뒤흔든다.
그는 “‘부모가 결혼했으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남매가 될 것’이라는 생각 역시 폭력이 될 수 있다”며 “어른들의 선택을 아이들에게 너무 쉽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좀처럼 해피엔딩을 택하지 않는다.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떠밀린 ‘추락’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낙하’를 이야기하려 했다”면서 “침묵의 강요와 희생의 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독자들이 현실을 직시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와 같은 결말은 내 소설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며 웃어 보였다.
‘낙하’는 그가 발표한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품은 소설이다. 그는 “새드엔딩으로 치면 이번 작품이 끝판왕”이라며 “오히려 비극적인 인물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내 삶은 이 정도는 아니다’라는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청소년문학상 수상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의 작품은 청소년 독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페인트’를 읽으며 자란 아이들이 이제는 20대의 성인이 됐다”며 “이들이 사회에 나가 사랑도 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함께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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