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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국 공급망 주축의 원전을 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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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기자I 2026.09.16 05: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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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국 공급망 주축의 원전을 설계하자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한미 양국이 18일(미국 현지시간) 대미투자 패키지의 구체 프로젝트를 확정해 발표한다. 미국 상무장관은 이미 “한국과 일본의 대미투자 7500억 달러를 원전 건설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한국 몫은 3500억 달러, 그중 2000억 달러는 현금이다. 관건은 돈만 내는가, 돈과 손을 함께 내는가다. 그 손이 어느 쪽 공급망의 손이냐가 80년 수익을 좌우한다.

양국이 함께 이기는 길은 분명하다. 잘 만들어진 한국 공급망이 주축이 돼 미국 원전에 공급하는 것이다. 미국은 제조 능력과 납기 준수 능력이 부족하고 한국은 기자재 제조, 시공, 운영 능력을 갖췄다. 한국 공급망이 미국 원전의 심장부에 들어가면 미국은 제때 전기를 얻고 한국은 80년 수익을 얻는다. 이것이 관세 협상의 대가로 내는 돈을 이익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이 원칙을 노형(원자로의 형태)별로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노형(AP1000)과 한국 노형(APR1400)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

AP1000은 미국 설계에 한국 공급망이 주축이 되는 구조다. 설계와 인허가 주도권은 웨스팅하우스에 있지만 실제 하드웨어는 이미 한국이 만들고 있다. 보글 3·4호기의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를 한국기업이 공급했고 이외에도 많은 기자재를 국내업체가 공급할 수 있다. 미국 설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되 기자재 공급, 시공, 운영 분야에서 한국 비중을 숫자로 합의하자.

APR1400은 우리 공급망이 주도하되 미국이 참여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이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표준설계인증을 받아 연방규정에 등재된 미국 외 유일 노형이다. 바라카 원전 4기가 납기를 증명했다. 다만 북미 시장 단독 진출이 막혀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주도’가 아니라 ‘한미 공동, 한국 비중 최대화’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웨스팅하우스와 공동 컨소시엄을 꾸리되 설계·주기기·시공·운영에서 한국 비중을 계약으로 최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점이 있다. 노형 논쟁을 넘어 기능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AP1000이든 APR1400이든, 노형은 미국이 정하되 어떤 노형이든 네 가지에서 한국 비중을 계약으로 못 박는 것이다. 첫째 기자재 공급 비율, 둘째 시공·EPC 지분, 셋째 60~80년 운영·정비·연료 계약, 넷째 지분과 의결권. 이렇게 하면 노형 싸움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 공급망 주축’이라는 정신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다. 미국은 자국 함정 건조를 한국 조선소에 맡기는 마스가(MASGA) 협력을 이미 시작했다. 원전도 같은 논리다.

여기에 참여를 지키는 안전망도 필요하다. 신규 원전 사업은 수십 년에 걸친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예상치 못한 비용 증가나 일정 지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계약 단계에서 공사비 변동에 대한 책임 범위와 분담 원칙을 명확히 정해 둬야 한다. 어느 한 쪽이 과도한 부담을 떠안으면 사업도 흔들린다. 위험은 합리적으로 나누고 성과는 함께 가져가는 구조가 돼야 한다. 참여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와 인력 투입을 결정할 수 있어야 사업도 안정적으로 추진된다. 그것이 한미 원전 협력을 일회성 투자가 아닌 장기적 파트너십으로 만드는 길이다.

돈은 이미 내기로 했다. 이제 손과 조건을 내자고 말할 차례다. 미국은 공장과 기술인력이 부족해 문을 열었다. 우리는 그 문 안에서 주인으로 들어가야 한다. APR1400은 한미 공동으로, AP1000은 미국 설계에 한국 공급망 주축으로, 그리고 어떤 노형이든 기자재·시공·운영·연료·지분에서 한국 비중을 숫자로 못 박자. 대미투자 1호 사업이 한국의 원전으로 출발하는지, 한국 돈으로 짓는 미국의 원전으로 출발하는지는 이 몇 달의 목소리에 달려 있다. 우리는 금고가 아니라 주인으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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