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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이사회를 경영 파트너로 활용하는 문화 필요"[사외이사 대해부]

김경은 기자I 2025.04.02 07:30:30

박선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뷰
재벌 중심 경영의 한계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충돌
사외이사제도 국내 기업문화에 맞게 운영해야
회사는 경영파트너로 인정하고, 이사회 전문성 높여야
SK그룹, 사외이사 온보딩 프로그램 사례 제시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 논란을 포함해 점차 강화하는 주주 자본주의 및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요구가 전통적 경영 문화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와 관련된 논란 속에서 영미권 사외이사 제도의 일방적 수용보다 한국 상황에 맞는 적합한 모델에 대한 모색이 필요다는 주장이다. 기업들은 이사회를 경영 파트너로 활용하는 문화가 필요하고, 이사회도 경영진과 협력해 자문 역할을 수행해야 나가는 방식이 제안됐다. 이를 위해 경영학계가 입을 모아 추천하는 ‘이사회의 전문성’ 강화가 주요 과제로 꼽혔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박선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영미권 사외이사제, 한국 실정에 꼭 맞는 옷 아냐

박선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 서울대에서 인터뷰를 갖고 “우리나라 사외이사 제도는 1998년 경제위기 이후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대안으로 등장하며 도입됐지만, 우리에게 안 맞는 옷일 수 있다”며 “기업들이 이사회를 경영 파트너로 활용하는 것이 사외이사 제도를 정착시킬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사외이사의 대다수가 경영진 출신이며, 한 기업의 경영자가 두 기업 이상의 이사회에 동시 선임되는 ‘겸임이사’가 일반적이다. 이데일리가 리더스인덱스에 의뢰해 분석한 지난해 포춘 100대 기업의 사외이사 현황에 따르면 기업 출신이 797명으로 83.1%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애플이 경쟁사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 CEO를 8번째 이사로 영입한 사례가 꼽힌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 사외이사의 대다수가 경영진 출신들로 여러 기업의 이사회 이사를 겸임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미국에서도 1900년대 초 만들어진 주주 자본주의 모델이 현대 경영 시스템과 완전히 부합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겸임이사제도는 이사회의 경영성과를 제고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한편에선 이들이 기업 엘리트(Coporate Elite)로 권력화한단 부정적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부적절한 협력이나 담합을 야기할 수 있어서다.

주주와 이사회 멤버가 사실상 동일했던 초기 자본주의 모델의 ‘주주 자본주의’가 소수 주주가 폭넓게 분포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더 이상 맞지 않는 개념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완전히 대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사외이사의 경영진 감시라는 사외이사 제도 취지를 실현하기도 어려워졌다. 사외이사제도가 관료 엘리트의 전리품이란 비판을 받는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서도 기업 엘리트의 담합 창구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는 “이 제도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 아니다. 글로벌 베스트 사례라고 받아들인 것인데 그러면 이걸 우리에게 맞추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같은 사외이사 제도라도 해도 우리나라와 미국은 여러가지 차이를 보이는 만큼 일률적 비교나 선진 사례라고 무턱대고 추종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 기업들, 이사회 활용법 몰라…자문기구로 활용해야

사외이사 제도만 20년 이상 연구해 온 국내 최고 전문가인 박 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한국 경영 문화에 걸맞는 방식으로 사외이사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규제에 의한 형식적 운영이 많다”며 “이제는 이사회를 경영 파트너로 활용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SK그룹의 사례를 언급하며 ‘사외이사 온보딩 프로그램’을 통해 사외이사가 회사의 전략과 운영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시스템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보딩 프로그램은 SK그룹이 새로운 구성원들의 직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직무 교육으로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도 진행된다.

또 이사회 구성에서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사회의 다양성을 이사회 역량 구성표(BSM·Board Skill Matrix)로 관리하며 필요한 전문성을 이사회에 체계적으로 반영한다”며 “한국도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이사회의 역할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사외이사의 역할이 독립성과 경영자 감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어떤 경영자가 자기를 해고하겠다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겠느냐”며 “일상적인 비즈니스 환경에서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기업 경영진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가 경영진과 대립하는 사안은 예외적인 경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긴장관계보다 자문을 구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도 경영진을 해고할 만큼 이사회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기업경영 문화에서도 더 이상 자본시장을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되는 단계가 됐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기업으로 가려면 이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자본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면 이사회를 무시할 수는 없다”며 “이사회는 주주 자본주의의 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선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 석사 △미국 미시간대 로스 경영대학원 박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마샬 경영대학원 조교수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두산 사외이사 △SK바이오사이언스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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