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따라… 역사따라… ''그 터''에 발을 디디다

조선일보 기자I 2008.02.28 10:11:00

당일치기 여행 ―경기 여주

[조선일보 제공]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 관리와 보존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야외에 별 보안장치 없이 드러나 있는 사찰 유물들은 도난, 화재 등에 취약한데 그 대표적 사례로 경기 여주 고달사터 부도(高達寺址 浮屠·국보 제4호)가 꼽히기도 했다. 여주읍을 중심으로 남한강과 남한강 지류를 낀 구릉과 산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중 역사와 유래가 깊은 곳들이 고달사터, 흥왕사(興旺寺), 신륵사(神勒寺)다. 이들은 남한강과 곡수천(曲水川) 지류 일대에 포진하고 있는 '같은 물'로 연결된 사찰·사찰터로서, 제각각 다른 역사적 운명을 겪었다.


10:00 터와 석조물만 남은 초대형 사찰 '고달사터'

영동고속도로 여주IC에서 나와 여주읍을 지나고 남한강을 건너 북내면 방향으로 간다. 북내면 소재지인 당우리에서 금당천과 완장천이 합수해 폭을 넓힌 곡수천은 꽤 넓은 벌판을 이루며 남한강으로 흘러 든다. 이 북내면의 너른 벌판과 곡수천 물줄기, 남한강과 연결된 교통 편의에 의지해 주변에 많은 사찰들이 세워졌는데, 그들 중 당대에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 고달사였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고달사터에는 아직 중요한 문화재가 많다. 지금 발굴공사가 한창인데 발굴팀 사이에 '터가 있는 상교리 전체가 사찰의 영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사찰은 거대했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사찰은 신라 말 고려 초, 원종대사(元宗大師)가 주지로 있을 때 고려 왕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대형 사찰로 성장했다. 남아있는 대좌들 중 가장 크다고 하는 석불대좌(石佛臺座·보물 제8호), 대한민국 대표 부도의 하나라고 할 만한 고달사터 부도(신라 말 원감대사(圓鑑大師)의 부도로 추정되나, 정확하지 않아 그저 고달사터 부도로 불리고 있다) 모두에서 화강암을 대리석 다루듯 섬세하게 깎아낸 당시의 첨단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자리를 지키지 못한 유물들도 여럿 있다. 일제 강점기 때(1934년) 고달사터 부도의 내부 유물이 도난 당했다는 기록이 있고, 부도 앞에 있었던 쌍사자 석등과 원종대사 탑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11:30 소형 사찰의 명맥을 유지하다 '흥왕사'

고달사터는 유적 답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지만, 흥왕사(031-882-0631)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1970년대 이 사찰의 주지를 거쳐 간 박헌영의 아들 원경스님이 약간 알려진 정도랄까.

흥왕사는 '숨은 사찰'이고, 그래서 그만큼 고즈넉하다. 번잡함을 싫어하는 답사객들은 이 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것이다. 사료에 이 사찰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스님들이 주로 이용하던 수행 사찰로 조용히 명맥을 이어온 듯하다.

사찰은 산 정상 부근의 비탈진 곳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사찰 아래쪽의 은행나무가 입구임을 알리는 일주문 같은 느낌을 준다. 사찰 안마당으로 오르는 돌 계단이 인상적이고 석축(石築) 위에 올려놓은 작은 삼층석탑이 사찰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사찰만큼이나 삼층석탑도 아담해서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
13:00 기와집에서 한정식 먹기

흥왕사를 둘러보고 북내면 소재지 당우리 일대와 신륵사 주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자. 당우리의 예닮골(031-883-5979)은 전통 기와집과 안마당을 갖췄다. 스무가지가 넘는 신선한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지는 예닮정식(1만2000원)이 푸짐하다. 일성콘도 앞 사거리의 마우리(031-885-8840)는 질 좋은 한우를 숯불에 구워 먹도록 낸다. 생등심 2만8000원, 양념갈비 2만5000원. 인근 목아박물관 안에 걸구쟁이네(031-885-9875·www.sachalfood.co.kr)는 청정 재료와 나물로 밥상을 채우는 사찰정식(1만원)이 정갈하다.

14:00 화려하게 부활한 천년 사찰 '신륵사'

여주읍 건너편 남한강 가에 자리 잡은 신륵사(031-885-2505)는 운 좋은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언제 창건되었는지 불분명한 데다 고려 말 유명한 나옹선사가 입적할 때까지 별다른 내력도 전하지 않았는데 조선 예종 1년(1469년) 세종대왕의 무덤을 영릉(英陵)으로 이장하면서 왕실 원찰(願刹·무덤을 지키는 사찰)로 지정된 후 크게 번성했다. 억불정책을 시행했던 조선시대에 재정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원찰이 되었으니 꽤 안정적인 지위를 인정 받은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륵사는 볼거리가 많다. 우선 강변 사찰이라 강을 낀 풍경이 좋은데, 이 강가 바위 위에 벽돌로 쌓아 올린 다층 전탑(보물 제226호)을 놓치지 말자. 탑에서 내다보는 남한강과 강월헌(江月軒), 강 건너 조망이 좋다.

다음에 볼 것은 극락보전(極樂寶殿) 뒤편의 예쁘고 아담한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이다. 고려 말 불교계의 거목이었던 지공, 나옹, 무학 세 스님의 영정을 모셔 놓은 건물인데 작지만 팔작(八作) 지붕을 이고 있어 세련돼 보인다. 조사당 뒤편 계단으로 올라가면, 나옹 선사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보제존자 석종부도(普濟尊者 石鐘浮屠·보물 제228호)와 석종비(보물 제229호)가 있다. 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초등학생 1000원.

◆대중교통

서울에서 여주까지: 서울 강변역 동서울터미널(1688-5979, www.ti21.co.kr)에서 여주행 고속버스(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9시40분까지 하루 31회 운행, 1시간30분 소요, 4600원)를 이용한다.

여주에서 고달사터와 흥왕사까지: 고달사터까지는 여주터미널 앞에서 양동, 계정리 행 버스(오전 6시10분부터 오후 8시50분까지 하루 14회 운행, 30분 소요)를 타고 주암사거리에서 내려 2㎞ 정도 걷는다. 혹은 당우리(북내)행 시내버스(오전 6시부터 오후 8시50분까지 하루 45회 운행, 20분 소요)를 타고 당우리에서 내려 택시로 이동한다. 택시 요금 당우리~고달사터 약 8000원, 당우리~흥왕사 약 6000원. 혹은 여주터미널이나 당우리에서 도전리행 버스(오전 6시10분부터 오후 8시20분까지 하루 6회 운행, 여주에서 약 25분·당우리에서 약 5분 소요)를 이용해 흥왕사 입구 하차.

당우리에서 신륵사까지: 여주읍으로 가는 시내버스(10~20분 간격)를 이용한다.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여주IC→37번 국도 여주 방향→여주읍, 여주대교를 지나 345번 지방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오른쪽에 신륵사가 있다. 신륵사에서 나와 345번 지방도로 양평·용문 방향으로 5㎞ 가면 당우리인데 당우리 삼거리에서 동쪽(오른쪽) 도전리 방향으로 4㎞ 가면 좌측에 '흥왕사' 안내판이 나온다. 당우리 삼거리에서 345번 지방도로를 따라 양평·용문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주암리 사거리에서 좌회전, 2㎞ 가면 우측에 고달사터가 있다.

◆대원고속(여주 시내버스) (031)884-9286
여주종합터미널 (031)882-9596
여주군청 문화관광과 (031)887-2068

◆당일치기 여행 추천 코스
고달사터→흥왕사→점심 식사→신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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