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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기업들의 상장 일정이 늦춰진 것도 투자 심리를 가라앉혔다. 2조달러(약 2694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노리는 앤스로픽은 미국 중간선거 이후인 11월 중순 상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일정이다.
앤스로픽의 경쟁사인 오픈AI조차 상장을 내년으로 미뤘다.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의 주식자본시장(ECM) 책임자는 “지금은 앤스로픽이 아니면 아무도 관심이 없다”며 “투자자들은 다른 기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대형 IPO에 투자 수요가 집중되면서 다른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은행들은 올해 호황을 누렸다. 지난 6월 사상 최대인 860억달러(약 115조8420억원)를 조달한 스페이스X의 IPO와 데이터센터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는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의 채권 발행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몇 주 새 AI 업황 둔화 우려와 데이터센터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부각되면서 IPO 시장이 급격히 말라붙었다.
AI 투자 붐과 연관된 기업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기업가치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지원하는 SB에너지는 아직 시설을 하나도 가동하지 않았는데도 약 500억달러(약 67조3500억원)의 기업가치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회의론은 주가에서도 확인된다. BCA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장한 기술주는 상장 첫날 대비 평균 약 23% 하락했다. 스페이스X 등 대형 IPO 종목도 상장 첫날 급등한 뒤 몇 주에 걸쳐 상승분을 반납했다.
영국 한 투자은행의 투자자는 “주가가 하루 오르고 나서 줄줄 흘러내린다”며 “상장 첫날 급등을 노리는 단타 자금이 몰려 청약이 과열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직 ECM 은행가는 “신규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손해 보는 거래라는 걸 알고 있다. 이익은 모두 기존 비상장 주주들이 가져간다”고 꼬집었다.
유가 급등락과 세계 국채 매도세도 시장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EG그룹은 올가을 뉴욕 상장으로 90억달러(약 12조123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약 10억달러(약 1조3470억원)를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상장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다. 회사 측 관계자는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성을 이유로 꼽았다.
다만 FT는 시장 불안을 이유로 대는 다른 기업들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채권·원자재 가격이 크게 출렁였지만 S&P500지수는 사상 최고치 근처에 머물고 있고, 변동성지수(VIX)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미국 밖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코르가 지원하는 부티크 호텔 업체 엔니스모어와 블랙스톤이 인수한 스페인 레저 기업 호텔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HIP)도 상장 일정이 바뀔 수 있다. HIP는 60억유로(약 9조1012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노리고 있다.
CK허치슨 계열 AS왓슨은 300억달러(약 40조4100억원) 규모의 런던·홍콩 동시 상장을 내년으로 미뤘다. 중국 증권당국 승인은 받았지만 사이버보안 당국의 허가가 아직 나지 않아서다.
영국에서도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와 여행사 러브홀리데이스가 상장을 연기했다. 한 은행가는 “올해 예정됐던 이름들이 모두 내년으로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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