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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멕시코의 반발을 사고 있다.
멕시코만은 멕시코 본토 6개주와 텍사스 등 미 남부 5개주, 쿠바에 둘러싸여 있는 만으로 지리적·역사적으로 멕시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다. 멕시코만은 스페인인들이 멕시코 지역과 그 연안을 발견하고 식민지화를 진행하면서 스페인 왕국의 일부가 됐으며, 16세기 초 스페인 탐험가들이 사용하던 지도에 처음 등장했다. 스페인어에서 멕시코의 만을 뜻하는 골포 데 멕시코(Golfo de Mexico)로 불리다가, 이후 영어 이름인 멕시코만(Gulf of Mexico) 알려지며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만 개명에 나선 것은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멕시코만은 어업과 해상운송, 석유와 가스 생산을 포함한 경제 활동의 요충지로 손꼽힌다. 중남미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것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큰 만의 이름이 멕시코만인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아메리카만이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은 미국 외 지역에서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 공식 문서에서 아메리카만으로 표기를 바꿀 수 있지만, 이를 다른 국가들이 따를 의무가 없다. 또 멕시코를 포함해 국제 해양법 체제에서도 멕시코만이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점을 감안할 때 미국 밖에서 명칭 변경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인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17세기 북미와 남미 지도를 배경으로 “미국을 ‘멕시코 아메리카(Mexican America)’로 부르면 어떻겠냐”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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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행정명령이 멕시코와의 관계만 악화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가간 지명 불일치는 종종 이웃 국가들 간의 외교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호르무즈 해협 안쪽 바다를 이란은 페르시아만, 사우디는 아라비아만이라고 부르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남중국해 역시 마찬가지다. 브루나이·중국·말레이시아·필리핀·대만·베트남 사이의 바다는 영어로 ‘남중국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필리핀에서는 서부 필리핀해, 베트남에서는 동해, 중국에서는 남해로 불린다.
미국 내에서도 멕시코만의 개명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지리조사국(USGS) 산하 지명위원회는 연방정부 전체에 걸쳐 통일된 지명 사용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지명 변경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없는 한 이름 변경은 권장하지 않는다”면서 “일반적으로 명칭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지역에서의 사용과 수용”이라고 명시했다.
미국 디지털 지도 업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수용할지도 불투명하다. 구글의 위성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는 여러 나라가 특정 수역의 명칭을 두고 다투는 경우 두 가지 이름을 모두 표시한다. 또한 각 지명은 해당 명칭을 사용하는 국가에 더 가깝게 배치한다.
영국 가디언은 “해양 지역의 명칭에 관한 공식적인 국제 협약이나 의정서가 없다”며 “국제 수로 기구(IHO)가 명칭을 표준화하고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해양 명칭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국제 기구도 없다”고 전했다.
‘미국의 위대함을 기리는 이름 복원’이라는 제목의 멕시코만 개명 행정명령은 30일 내 발효된다. 연방 지명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의 지명을 변경하는 데는 주, 부족, 지도 제작자 및 기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최소 6개월이 걸린다.